한 장의 추억 남자는 오랜만에 방 정리를 했다. 가구 배치를 바꾸느라 책장에서 책을 꺼내고 서랍을 비우고 방안에 짐을 산처럼 쌓아뒀는데 사진 한장이 떨어졌다. 여자의 증명사진이었다. 이력서에 붙일 거라면서 예쁘게 나와야 한다고 수선을 떨며 신촌 어디메에 있는 사진관을 둘이 함께 찾아갔었다. 남자도 같.. ┠그 남자의 날씨 2007.02.20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 "나 사랑해?" '아~ 또 시작했네...' 남자는 귀찮은 마음이 먼저 생겼다. "응" "응 말고. 내가 사랑해? 하고 물으면, 응 사랑해. 하고 말하면 안돼?" "꼭 말로 해야 돼?" "응. 꼭 말로 해야 돼. 왜냐면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 여자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었다. 아니다, 언제나는 아니었다. 그녀를 만난.. ┠그 남자의 날씨 2007.02.08
기억력 동창녀석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늦은 밤. 모처럼 겨울답게 날씨가 매섭다. 남자는 어깨를 웅크리고 옷깃을 여미며 종종 걸음을 걷는다. - 가디건이라도 입지 그랬어. 요즘 예쁜 색깔로 많이 나와서 사무실에서도 단정해 보이고 따뜻하고 좋은데... 내가 사 주면 좋겠지만. 남자가 그녀와 마지막으로 .. ┠그 남자의 날씨 2007.02.02
눈을 기다리다 남자는 짐짓 눈에는 관심이 없는 척 했다. 어젯 밤 뉴스에서 익숙한 얼굴의 기상캐스터는 오늘 아침 10시경부터 눈이 올거라고 했고, 출근길 라디오에서 역시 '눈구름의 이동이 아주 느립니다. 두세시간 후부터 서울에 눈이 내릴 예정입니다.'하고 말했다. 바쁜 아침 업무를 마치고 잠시 고개를 들어보.. ┠그 남자의 날씨 2007.01.26
그와 그녀 9 나는 도서관에서 평상을 좋아한다. 출구와 가까운 통로에서 출구 쪽에 등을 대고 앉는 걸 좋아한다. 밀폐된 공간이 싫지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들이 나를 쉽게 찾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도서관 자리가 바뀌어 버렸다. 사람이 많지 않은 논문실로.. ┠그 남자의 날씨 2005.07.18
그와 그녀 8 둔한 걸까? 아니... 내가 이상한 거지. 그녀는 이 학교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학교 안에 모르는게 너무 많다. 후문으로 나가면 이어져 있는 공원도 모른다고 하고 정자도 안 가봤다고 하고 대체 2년 동안 뭘 한 건지 왠지 그녀에게 가이드를 해 줘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팍팍 솟는다. 그래서 오늘은 공.. ┠그 남자의 날씨 2004.06.10
그와 그녀 7 새를 보러 가자고 한다. - 나 저녁에 수업 있는데... 계속 핑계를 대고 있지만 정말 가고 싶었다. 그 공원에, 너와 함께. 못이기는 척 따라나선 길이 생각보다 멀었다. - 아무래도 시간안에 못 올 것 같아. 아직 멀었어? - 올때는 택시타면 돼요. 인적이 없는 길. 노랗게 물든 은행잎. 이 길이 멋있어서 가끔.. ┠그 남자의 날씨 2004.04.26
그와 그녀 6 그녀는 독특한 목소리. 그리고 그녀만의 냄새가 있다. 처음 내가 냄새라고 말했을 때 깜짝 놀라던 표정. -무슨 냄새? -아기 냄새요. -아기 냄새... 아기냄새라는 말에 한숨을 놓는 듯 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녀를 찾았었다. 처음 대학에 들어오던 날 처음 마신 소주에 속이 부대껴 아무도 몰래 혼자 .. ┠그 남자의 날씨 2004.04.06
그와 그녀 5 비가 오고 있다. 많이는 아닌데 추적추적 내리는 모습이... 좀... 우울하다. 그리고 오늘은 그 아이도 이상하다. 원래 말수가 적기는 하지만 유난히 조용하고,... 에이, 아무튼 오늘은 이상 야리꾸리한 날이다. 날씨도, 기분도. 일찌감치 집에 간다고 버스를 탔는데 웬일로 바래다 준다고 한다. 중간에 갈.. ┠그 남자의 날씨 2004.03.17
그와 그녀 4 어제 전공시간에 술을 마셨다. 물론 나야 기회다 싶어 땡땡이를 쳤다. 호출을 받고 뛰어 갔더니 누나는 친구들이랑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필요할때는 없다는 둥 해 가면서 경이 누나가 구박을 한다. - 냉큼냉큼 잘도 받아 마시더라. 밥도 굶었다는 것이 안주도 안 나왔는데 왜 먹냐구. 오늘 낮.. ┠그 남자의 날씨 200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