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랑해?"
'아~ 또 시작했네...' 남자는 귀찮은 마음이 먼저 생겼다. "응"
"응 말고. 내가 사랑해? 하고 물으면, 응 사랑해. 하고 말하면 안돼?"
"꼭 말로 해야 돼?"
"응. 꼭 말로 해야 돼. 왜냐면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
여자는 언제나 그렇게 말했었다. 아니다, 언제나는 아니었다.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뜰떠서 샤워를 하고, 스킨을 바르고, 거울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무스를 살짝 발라줄까 하다가.. 머리를 만질 때 딱딱한 느낌은 싫다던 그녀의 이야기가 생각나 참고 집을 나서던 때, 원래 그런거 들고 다니는 거 너무 창피해서 하지 않지만 가끔, 아주 가끔 장미 백송이 들고 회사 앞까지 찾아가서 기다려 줄 때, 그녀가 좋아하던 사람 크기만한 인형.. 그냥 들고 가는 거 창피해서 시멘트 색깔 상자에 넣어 낑낑대며 들고 갔을 때...
그럴 때 그녀는 한 번도 "나 사랑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건 왜냐면...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 자기는 왜 묻지 않아?"
"꼭 말해야 알아? 말하지 않아도 다 알잖아."
"아니. 몰라. 자긴 알아?"
"응"
"그치? 거봐~ 난 말하지 않아도 자기는 다 느껴지지? 내가 사랑하는 거. 근데 왜 난 못 느껴? 못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거야? 느껴지지 않으면 듣게라도 해 주면 안돼?"
남자는 여자의 억지 때문에 오늘 하루 또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말싸움에서 내가 이길 도리가 없지.'
남자는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여자의 말. 느낄 수 없는 건 표현하지 않는 남자의 탓이라던 여자의 말을 그저 잔소리일 뿐이라고. 괜한 투정일 따름이라고 무시했다.
불현듯 주말이면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되어서야 남자는 인정한다.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당연히 만날 거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사실은 피곤했다고.
주말 하루쯤은 집에서 쉬고 싶었는데도 사람 많은 극장을 가야하는 게 사실은 싫었었다고.
가끔은 버스 먼저 태워주는 것조차 귀찮았다고.
내 주머니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차 끊기는 시간에 집에까지 바래다 달라는 거 사실은 짜증났었다고.
남자는 지금에서야 여자의 말에 수긍한다.
"나 사랑해?" 하고 매번 묻게 만든 건 남자의 탓이었다는 말.
느끼지 못하는 건 사실은 남자의 마음이 그랬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냥 너무 익숙했던 것 뿐이었다.
매일하는 인터넷처럼, 없는 곳에서 살아보기 전에는 내가 중독이 되었는지, 없으면 너무너무 허전한지 미처 몰랐던 것 뿐이었다고.
이 금단 현상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사라지는 걸까?
아침부터 비가 와서 남자는 또 여자를 떠올렸다.
이제는 잘 해 줄 수 있는데...
사랑한다는 말도 매일 매일 해 줄 수 있는데...
먹고 싶다는 거 기껏 사 먹여주는데 또 다른 게 맛있겠다고 말해도 짜증 안 낼 수 있는데.
좀 어울리지 않는 원피스 입고 나와도 구박하지 않고 사실은 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인다고.
그렇게 원하던 만원지하철, 푸쉬맨이 밀어줘야 겨우 탈 수 있다는 지하철에 같이 찡겨 타 줄 수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쯤은 바꿔 달아줘야 기분이 좋아진다던, 그게 네 인생 최고의 사치라고 하던 3천 원짜리 핸드폰 줄, 일 주일에 한 개씩 이라도 사 줄 수 있는데.
묻지 않아도 느끼게 해 주고, 묻지 않아도 말 해 줄 수 있는데.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듯이 그렇게 매일 새롭기를 바란다는 말... 이제는 다 알아들었는데.
다시 사랑을 하게 되면 말이야...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는 여자에게는 말이야... 꼭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줘. 가끔은 지겹고, 귀찮은 생각이 들어도 일주일만 참고 사랑한다고 말해 봐. 그러면 다 괜찮아질거야. 사실은 이거 내가 써본 방법이거든. 효과 있어 ^^
여자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걸.
그래도 사랑하니까 남자에게는 티내지 않고 지내왔었다는 걸.
그런 걸 하나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남자는 자신이 무뎠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하게 되면, 그때는 모두 표현하리라,,, 떠난 사랑에 못해 준 것을 후회하는 미련한 짓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는다.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진다.
그 익숙함이 습관으로 반복되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