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날씨

눈물나게 매운 불닭

약간의 거리 2007. 3. 2. 17:01

 

 

남자는 비가 오면 매운 불닭이 생각났다.

그 날, 먼저 헤어지자 말한 그녀는 배가 고프니 밥을 먹자고 했다. 그리고는 불닭집으로 들어갔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너무 맵다.. 근데 맛있네.. 왜 안 먹어? 혼자 먹기엔 너무 많단 말이야. 하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여자들이 헤어져서 울고 불고 하다가도 고추장에 비벼서 밥통 끌어안고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정말 그 상황에서 그게 먹고 싶은지 이해가 안 됐다. 아니 딱히 불닭이어서가 아니라 음식이 목으로 넘어간다는 게 이해가 안 됐었다.

맵다, 정말 맵다.. 하면서 눈물 훔치고, 콧물 닦아가며 먹는 모습이 흉한 것도, 미운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날 남자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냥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고, 그렇게 먹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볼 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이 짠..해와서 먹을 수가 없었다.

 

배부르면 그만 먹어... 했더니 뭐라고 했더라... 아깝다고 했나? 그래도 맛있다고 했었나?

끝까지 먹겠다는 걸 겨우 뜯어 말려서 데리고 나왔는데.. 헤어질 때까지 그녀는 눈물 한 방울 비추지 않았다. 여자는 참 독하구나.. 생각했었다. 정말 나를 사랑하기는 했었던 거니...

 

남자는 하나라도 더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녀가 평소에 같이 하고 싶은게 뭐가 있었더라... 계속 생각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갔다. 유람선을 타러 가고, 갖고 싶어 했던 선물도 사주었다. 너무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밥을 먹는 것을 빼 놓고는 무얼 하자고 하던 응.. 그래.. 하고 대답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심장에서 울리는 것만 같아서 택시 잡는 시간도 아까웠는데 그녀는 너무나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집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거의 뛰다시피 돌아나와 길 끝에서야 겨우 돌아봤는데 골목 끄트머리에서 살짝 숨는 그녀를 설핏 본 듯했다. 하루 종일 그토록 평온했던 표정을 생각하면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자는 자신이 가는 모습을 여자가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냥 안심이 됐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줄 거라고...

 

 

비 한번 죽죽 잘도 내린다.. 생각하며 회사 옥상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문자가 연달아 날아온다.

비도 오고 금요일인데.. 술 한 잔 할까?

야, 동동주에 파전 어떠냐?

이런 날은 니가 형님 좀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

 

비오는 날 불닭은 생각하는 건 역시나.. 남자뿐인것 같다. 날이 살짝 추워졌다. 담배를 끄고 어깨를 한번 움추렸다가 편 남자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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