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이 일찍 끝난 저녁이다. 신입사원 지환이와 퇴근하는 길이었다.
- 배고픈데... 밥이나 먹을까?
- 술이 아니고요?
- 응. 오늘은 술보다는 밥이 땡기는데.
- 좋습니다. 뭐 먹을까요?
- 글쎄... 생선구이 어때?
고등어구이를 시키자 바로 상이 차려진다. 김치, 나물, 전, 멸치 볶음에 찌개까지. 겨우 5천원짜리 생선구이 하나에 이렇게 상을 거하게 차려줘도 되는 건가? 그녀와 먹던 생선구이는 언제나 그녀가 싫어하는 냉 콩나물국과 메인 메뉴인 구운 생선 뿐이었는데. 선배는 애인 없어요? 응? 으응... 왜요? 넘 튕기시는 아니에요? 글쎄... ㅎㅎ 된장찌개 맛있네요. 여기 너무 괜찮은데요. 그러게..
- 생선구이는 좋은데... 생선구이 집은 원래 다 이래? 나 지저분해서 싫은데... 그리구 나 콩나물국 싫어. 거기다 왜 꼭 찬 거 주는 거야? 뜨거우면 국물이라도 먹을텐데...
늘 반복되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다. 나에게 하는 잔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말이 듣기 싫어서 괜스레 짜증이 난 남자는 열심히 생선 가시를 발라내고 그릇에 쌓인 가시 발린 생선을 가끔은 그녀의 밥 위에 얹어주곤 했다. 선배, 뭐해요? 응?... 애인한테나 발라주세요. 이러면 여자들이 좋아할텐데...ㅎㅎ
남자는 어느새 또 생선가시를 발라내고 있었다.
- 그냥 먹어. 내가 알아서 먹을께.
- 발라 놓은 걸로 먹어.
- 나야 좋지만... 얄미워 보이잖아. 낼름 받아 먹으면.
- 괜찮아. 먹어.
선배 오늘 좀 이상하네. 남자 둘이 밥 먹으러 와서 역시나 어색한 거죠? 남자는 정말이지 모든 상황이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잘 차려진 밥상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찌개도. 그리고 저기 놓인 생선들… 가시를 발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젓가락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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