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짐짓 눈에는 관심이 없는 척 했다.
어젯 밤 뉴스에서 익숙한 얼굴의 기상캐스터는 오늘 아침 10시경부터 눈이 올거라고 했고, 출근길 라디오에서 역시
'눈구름의 이동이 아주 느립니다. 두세시간 후부터 서울에 눈이 내릴 예정입니다.'하고 말했다.
바쁜 아침 업무를 마치고 잠시 고개를 들어보니 시간은 어느새 11시 16분. 아침엔 눈이 올 듯했던 잿빛 하늘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오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눈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럼 그렇지. 일기예보가 맞을리 없잖아. 이번에는 웬일로 시간까지 정확하게 짚어주나 했더니...
원래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지만, 오늘 엇나간 일기예보는 조금 실망스럽다. 꼭 눈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기보다는
이렇게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 겨울같지 않은 겨울에
펑펑 함박눈이 쏟아지면 잠시나마 한겨울같은 느낌을 맛보게 되는 것처럼, 눈이 내려준다면...
남자에게도 오랫동안 오지 않았던 반가운 소식이 내려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던 것이다.
늘 화이트 셔츠에 잿빛 양복, 혹은 감색 양복을 입던 남자의 옷차림이 요 며칠 변화한 것도 그 탓이리라.
스프라이트 정장에 가끔은 커프스도 챙겨보고,
너무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던 금목걸이를 한 번 걸어볼까? 고민도 해 보고
오늘은 체크남방에 콤비쟈켓을 입어서 모처럼 캐쥬얼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늘은, 금요일 이기도 하니까.
'어디 놀러가세요?' 묻는 사람이 참 많은 날이다.
퇴근시간.
여전히 눈은 내리지 않는다. 실망하며 사무실을 나와 거리로 나서는데 땅이 젖어있다.
-어?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본다. 눈은 내리지 않는다.
-비가 왔었나? 눈이 살짝 왔다가 녹았나?
여전히 눈은 내리지 않지만 마음이 조금은 경쾌진 남자가 발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