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날씨

그와 그녀 7

약간의 거리 2004. 4. 26. 18:01

 

새를 보러 가자고 한다.

 

- 나 저녁에 수업 있는데...

 

계속 핑계를 대고 있지만 정말 가고 싶었다.

 

그 공원에,

너와 함께.

 

못이기는 척 따라나선 길이 생각보다 멀었다.

 

- 아무래도 시간안에 못 올 것 같아. 아직 멀었어?

- 올때는 택시타면 돼요.

 

인적이 없는 길.

노랗게 물든 은행잎.

이 길이 멋있어서 가끔은 일부러 학교에 올때 택시를 타곤 했었다.

그 길 어딘가에 공원에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무슨 새가 있어? 전에 TV에서 보니까 노란색 새가 있다고 했는데... 그거 말이야? 너 봤어?

 

말수가 적은 그애는 역시나 답이 없다.

 

한참만에 도착을 했다.

 

솔직히 공원은 시시했다.

선배들이 부르던 무슨 민중가요 같은 노래 속에도 나오고

언젠가 봤던 TV에서 약수터가 유명한 듯 소개를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나무도 별로 없고, 벤치도 없고, 그리고

그냥 입구에 서서도 다 둘러보일만큼 작았다.

 

-새우깡 먹을래요?

-응. 근데 새는 어딨어?

 

새우깡을 한웅큼 들고는 그애가 성큼 새를 향해 걸어간다.

 

 

아~~~~~ 실망.

 

 

 

***

 

얼마전 그 애의 손등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새를 구해주려다 고양이한테 다쳤다고 했다.

고양이가 멀리서 새를 노리고 있다가 공격을 하는데

자기가 그걸보고는 새를 구하려고 손을 뻗치면서 고양이가 할퀴게 되었다고...

 

그래서 나는 정말 많이 기대를 했다.

그 애가 그렇게 몸을 날려 구해주려고 했던 그 새에 대해서...

 

 

-야! 비둘기보고 '새'라고 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그럼 저게 닭이에요?

 

 

그래두 그건 우리의 첫 데이트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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