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챌린지 21

10. 못 하는 게 없는 사람

아빠는 규칙적이고 정확한 사람이었다. 딸 네 명이 각각 요일마다 다르게 끝나는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기다렸다. 예상한 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않으면 혼이 났다. 집에 가면 할 일이 많았다. 아빠가 다친 이후로는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했다. 아빠의 소변통도 비워야했고, 재털이도 치워야했다. 누워 계신 자세도 바꿔 드려야 했다. 아빠는 스스로는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 자세로만 계속 누워 있으면 욕창이 생겼다.  두어시간 마다 아빠의 자세를 바꿔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욕창이 생겼다. 아빠는 살이 썩는 욕창이 생겨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자세를 바꿔도 계속 여기저기 욕창이 생기고,  그 자리가 눌리지 않도록 자세를 잡아 드려야 했..

my book 2024.11.17

9. 아, 달고나!

집 골목을 막 벗나면 커다란 공터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그곳에서 뛰어 놀았고, 공터 한 켠에는 뽑기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국자의 손잡이를 펴 놓은 것처럼 생긴 것에다가 설탕과 하얀 가루를 넣고 막 저으면 노랗게 변하는데 그 노란 덩어리를 살짝 판 위에 넣어 놓고 동그란 판으로 살짝 누른 뒤에 모양을 찍는다. 뽑기는 한 개에 10원 이었나? 50원 이었나?정확한 가격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니는 공터 귀퉁이에 달콤한 냄새가 퍼지면 아이들은 그곳에 달려가 뽑기를 사 먹었다. 모양을 깨뜨리지 않고 뽑기에 성공하면 하나는 더 먹을 수 있었다. 오징어게임으로 유명해진 달고나가 바로 그 뽑기다. 옛날에는 뽑기와 달고나가 다른 건 줄 알았는데 지금에서야 보니 같은 거였다. 아무튼 나는..

my book 2024.11.16

8. 잘하는 것과 하기 싫은 것

나는 계산을 잘 한다. 숫자 암기도 잘하는 편이다. 참, 여기서 암기와 계산을 병합하면 안된다. 암산은 못하기 때문이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주산 부기 타자 자격증이 필수였는데 아이들이 제일 어려워했던 부기 자격증을 가장 먼저 취득했다.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와 같은 재무재표 서류를 보거나 맞추는 걸 쉽게 해서 가능했다. 해서 한때는 공무원이 되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을 따라 세무공무원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노량진 공무원 학원에서 세법 선생님은 '너처럼 빨리 이해하는 애를 못봤다'며 꼭 붙을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진짜진짜 재미가 없었다. 결국 이러저러한 핑계들로 포기하고 그만뒀다. 첫 직장에서는 급여관련 업무를 했는데 숫자의 오류를 정말 잘 찾아냈다. 직관적으로 뭔가 합계가 다른걸 알아챘고 ..

my book 2024.11.15

7. 쉿 비밀이야!

해마다 5월 18일이 되면 엄마와 아빠는 광주의 기념식을 다녀오셨다. 기념식에 다녀오실 때마다 자료집, 비디오테잎과 같은 광주의 기록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을 가져오셨는데, 한 번은 꼬깃꼬깃 낡은 악보 하나를 가지고 오셨다. 아버지는 그 노래를 부르기 원하셨지만 우리는 악보를 읽을 줄 몰랐다. 다행히 친척 중 친구가 피아노를 전공한다면서 테이프에 반주를 녹음해다 주었다. 저녁때가 되면 우리 가족들은 모두 카세트테이프를 틀며 반주를 반복해서 들었고, 반주가 익숙해지면서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작은 악보 하나에 여섯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가사를 읽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그건 의 악보였다. 우리는..

my book 2024.11.14

6. 자전거 타고 경주 하이킹하기

자전거를 타고 경주라는 도시를 산책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꿈이다. '꿈'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바람, 그러니까 소망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주를 처음 간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그때는 학교에서 단체로 이리가라하면 가고, 저리가라하면 갔던 거고 그렇게 열심히 유적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단체관광버스를 타고 돌며 저~~쪽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작은 탑 같은 것이 첨성대라는 설명이 기억난다. 시험 때면 그렇게 중요하게도 문제에 나왔는데 내려서 가까이 가 보지도 않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첨성대의 작은 크기에 놀라고 실망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거리 곳곳에 유적이 있는 경주는 자전거를 타고..

my book 2024.11.13

5. 낯선 사람

골목 어귀에는 가끔씩 낯선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집들이 있었고 사각형 한쪽 모퉁이가에 우리 집이 있었다. 대문이 있는 같은 골목의 길 끄트머리에 가끔씩 어떤 아저씨가 서 있었다.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누구네 집을 찾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디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니면서 친구들과 놀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구멍가게를 갈 때면 골목 끝에서 까만색 머리가 살짝 보였거나 베이지색 버버리 자락 같은 것이 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막상 골목 끄트머리에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이었던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바로 그 낯선 아저씨가 집 안에 있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마루에 올라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아빠..

my book 2024.11.12

4. 육교는 싫어, 특정공포증?

예전에는 육교와 고가도로가 정말 많았다. 지금 교차로가 있는 곳에 지하도가 없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과거에 육교가 있었을 것이다. 길을 건너려면 당연히 육교를 오르내려야만 가능했던 시절이 있다. 사회에 순응적이지 않았던 나는 그것이 몹시 불만이었다. '아니, 왜 사람이 오르내려야 하냐고? 바퀴있는 차가 올라가든, 내려가면 더 쉬울 것 아냐!' 라고 주장했지만, 혼잣말이거나 같이 걷는 누군가에게 하는 하소연 정도로만 표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 2년 차가되었을 때 회사는 청계고가도로의 시작 지점인 삼일고가 바로 건너편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에도 고가 아래 어둑어둑한 횡단보도를 건너야 종로로 나올 수 있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탈 때에도 고가 아래를 건너야했다. 나는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가야..

my book 2024.11.11

3. 젓가락질 잘 해야만 라면 먹나요

DJ DOC의 가사에는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 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문화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지 않기 때문에 DJ DOC는 이런 노래를 하게 됐을 것이다. 하물려 외국인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려고 하고, 젓가락질을 잘 하는 외국인을 보면 기특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말이다. 결국 지금에는 에디슨젓가락이라는 것이 생겨서 너댓살만 되면 젓가락질을 학습시키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나는 젓가락질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 나이면 아무리 에디슨 젓가락과 같은 도구가 없었던 시절이라고는 해도 배웠을 법한데 말이다. 그 때에는 나보다 한살 위의 언니와 나만 외할머니댁에서 살고 있었다. 아빠가 광주에서의 사고로 병원에 있으..

my book 2024.11.10

2. 나의 최애 호신용품, 우산

좀 오래전 드라마 중에 라는 작품이 있다. 이승기, 차승원, 이홍기, 오연서, 이세영 등 유명한 배우와 아이돌이 나왔던 드라마다. 손오공을 비롯한 요괴(?)들이 등장하고, 그 중 평범한 인간이 한 명 등장하는데, 그녀는 귀신을 본다. 어렸을 때 어찌저찌 벌을 받고 있던 손오공을 풀어 준 벌로 귀신을 보게 되었다. 성인이 된 그녀는 처음 손오공을 만났을 때 들고 있던 노란 장우산을 아직도 들고 다닌다. 무서운 귀신과 마주쳤을 때 우산을 펼쳐 시야를 가리기도 하고, 때로는 우산을 휘둘러서 귀신과 대적하기도 한다. 물론 우산으로는 귀신을 퇴치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노란 우산은 그녀의 하나뿐인 무기이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귀신을 혼자만 보는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건 그 우산 뿐이다. 어렸을 때 우..

my book 2024.11.09

1. 가방이 무거운 아이

나는 정리정돈이 잘 안되는 사람이다. 장거리 여행을 할때 여행가방을 싸면 아무리 최소한의 짐을 챙겨도 가방이 닫히지 않았다. 가방에 올라타고 다른 누군가의 힘을 발려서야 겨우 닫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내력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였다. 언제나 내 가방은 곧 터질듯 빵빵했고 무거웠다. 그러다가 서서히 지퍼가 맞물리는 부분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가방 무게로 언제나 어깨가 아팠는데 어쩌면 그 무게에 눌려서 키가 안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 네 가방 불쌍해. 주인 잘 못 만나서 고생이 많아. 했다. 하루는 '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런지 궁금하다'는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가방 속 물건을 점검했다. 친구 한 명도 자신의 가방 속 물건들을 꺼내며 비교해 봤다. 교과서, 노트, 영어사전, 필통 그리고는 휴지, 손..

my book 202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