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골목을 막 벗나면 커다란 공터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그곳에서 뛰어 놀았고, 공터 한 켠에는 뽑기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국자의 손잡이를 펴 놓은 것처럼 생긴 것에다가 설탕과 하얀 가루를 넣고 막 저으면 노랗게 변하는데 그 노란 덩어리를 살짝 판 위에 넣어 놓고 동그란 판으로 살짝 누른 뒤에 모양을 찍는다.
뽑기는 한 개에 10원 이었나? 50원 이었나?
정확한 가격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니는 공터 귀퉁이에 달콤한 냄새가 퍼지면 아이들은 그곳에 달려가 뽑기를 사 먹었다. 모양을 깨뜨리지 않고 뽑기에 성공하면 하나는 더 먹을 수 있었다. 오징어게임으로 유명해진 달고나가 바로 그 뽑기다. 옛날에는 뽑기와 달고나가 다른 건 줄 알았는데 지금에서야 보니 같은 거였다.
아무튼 나는 그 뽑기를 사 먹을 돈이 없었다.
하루는 그게 너무나 먹고 싶어서 연탄불 위에 국자를 올리고 설탕을 녹였다. 젓가락으로 젓고 또 저었지만 나는 뽑기 아줌마가 만드는 것처럼 노란색 말랑말랑한 덩어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설탕은 녹아서 물처럼 녹았다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내가 아무리 젓가락을 빨리 휘저어도 젓가락마저 국자에 달라붙은 것처럼 단단해져 버렸다. 결국 나는 뽑기 만들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딱딱하게 굳어 국자에 붙어버린 설탕이 아무리 쑤세미로 박박 밀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국자의 뒷편은 연탄불에 그을려 까맣게 타 버렸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저녁에 엄마한테 혼구녕이 날게 뻔했다. 있는 힘을 다해 국자를 벅벅 밀어봤지만 까맣게 그을린 뒷편도, 굳어버린 설탕도 그대로였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한테 혼날 것을 각오하고 설겆이통에 국자와 젓가락을 던져 놓았다.
엄마가 왔다. 아무 말씀이 없다. 다음 날 아침에도 엄마는 야단을 치지 않았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고 나서 슬그머니 부엌에 갔다. 어제 달고나를 만드느라 까맣게 그을린 국자가 없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국자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채로 한 곳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엄마가 몰라서 나를 야단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다행이다. 국자가 닦여서 다행이다. 엄마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야단을 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그 후로 달고나가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참, 내 설탕에는 '소다'를 넣지 않아서 달고나로 변신할 수 없었다는 걸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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