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 18일이 되면 엄마와 아빠는 광주의 기념식을 다녀오셨다.
기념식에 다녀오실 때마다 자료집, 비디오테잎과 같은 광주의 기록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을 가져오셨는데, 한 번은 꼬깃꼬깃 낡은 악보 하나를 가지고 오셨다. 아버지는 그 노래를 부르기 원하셨지만 우리는 악보를 읽을 줄 몰랐다.
다행히 친척 중 친구가 피아노를 전공한다면서 테이프에 반주를 녹음해다 주었다.
저녁때가 되면 우리 가족들은 모두 카세트테이프를 틀며 반주를 반복해서 들었고, 반주가 익숙해지면서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작은 악보 하나에 여섯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가사를 읽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그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악보였다.
우리는 매일 저녁 몇 번씩이나, 아주 여러 번 그 노래를 연습했다. 초등학생에게는 의미도 알수 없는 노래였지만 그냥 아빠를 따라 열심히 불렀다.
노래 연습이 끝나면 아빠는 항상 주의를 주었다.
- 절대 밖에 나가서는 부르면 안돼. 알았지? 집에서 우리끼리 있을 때만 불러야 돼
아무개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5.18 기념행사에서 임을위한행진곡 합창을 금했었다. 이 노래가 가진 상징성이 그렇게 강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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