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육교와 고가도로가 정말 많았다. 지금 교차로가 있는 곳에 지하도가 없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과거에 육교가 있었을 것이다. 길을 건너려면 당연히 육교를 오르내려야만 가능했던 시절이 있다. 사회에 순응적이지 않았던 나는 그것이 몹시 불만이었다.
'아니, 왜 사람이 오르내려야 하냐고? 바퀴있는 차가 올라가든, 내려가면 더 쉬울 것 아냐!' 라고 주장했지만, 혼잣말이거나 같이 걷는 누군가에게 하는 하소연 정도로만 표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 2년 차가되었을 때 회사는 청계고가도로의 시작 지점인 삼일고가 바로 건너편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에도 고가 아래 어둑어둑한 횡단보도를 건너야 종로로 나올 수 있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탈 때에도 고가 아래를 건너야했다. 나는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가야하는 게 싫었다. 우선 어두운 게 싫었다. 다리 아래는 계절과 상관없이 습하고 추웠다. 비둘기들도 많아서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지나가더라도 으슥한 밤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때때로 빨리 이 길을 지나쳐가고픈 마음에 무단횡단을 일삼기도 했는데 어김없이 도로 중간의 다리 기둥에 숨어있던 경찰관이 등장해 신분증을 요구했다. 게다가 머리 위로는 차들이 지나는 굉음과 언제 날아오를지 모를 비둘기들도 두려웠다.
육교는 고가도로와는 달리 내가 위로 올라가는 거였지만 싫기는 매한가지다. 아주 단순하게는 계단을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 고소공포증까지는 아니었지만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유쾌하지 않았다. 또 대부분의 육교들이 누군가 뛰어가는 사람이 등장하면 흔들다리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지진이 난 줄 알았다. 잘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 위를 걷는 듯 몸이 붕붕 뜨는 느낌이 든 것이다. 그래서 언제 부터인가는 살살 난간을 잡고 걷기도 했지만, 난간도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의 육교 난간에는 광고물이 붙어 있어서 안전장치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육교 위를 건넌다거나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가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싫은 상황이 있었다. 그건 내가 탄 버스가 육교나 고가도로 아래에 정차하게 되는 경우였다. 특히나 한강대교를 노량진 방향으로 건너오자마자 고가도로 아래 신호정지로 서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고가도로들이 철거되고, 노들섬역이 생기면서 이제는 그 고가도 사라졌다.)
'육교가 무너지면 어쩌지.', '고가가 머리 위로 떨어지지는 않겠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때는 아직 성수대교 붕괴(1994년)나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가 일어나기 전이었으니 무슨 국가적인 대형 참사 경험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두려움이 들면 나는 '버스야 제발 빨리 지나가라~'하면서 빌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이렇게 버스가 다리 아래에 서 있다가 깔려 죽게 되면 그 후에 나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의 갑작스런 사고의 충격으로 슬퍼하기도 전에 내가 뭔가를 잘 못 한게 있어서 우리 가족들이 당황을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데 죄 짓지 말고 살자.' 하는 생각도 하고, 그날 집에 오면 카드대금을 모두 선결제 해서 완납했다.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던 엄마가 갑자기 카드대금이 연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황당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좀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는 바이킹과 같은 놀이기구도 정말 무서워한다. 언젠가 바이킹을 탔는데 사람들이 바이킹은 뒷자리가 제일 재밌다고 해서 맨 끝자리에 앉았었다. 내 몸이 가장 꼭대기에 올라가 있을 때는 재밌고 신이 났다. 맞은편 아래쪽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 놀이기구 바깥에 서서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정말 그만이었다. 이번에는 바이킹이 반대로 내려갔다. 나는 가장 아랫쪽에서 바이킹 맞은 편에 탄, 지금은 나를 마주보고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왔다.
- 안전장치가 풀려서 저 사람들이 그대로 내 위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나는 안전장치에 몸이 묶여 있으니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깔려 죽겠구나. 손을 저렇게 번쩍 올리면 안되는데... 안전장치가 풀리지 않게 손으로 누르고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 후로 바이킹은 탈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뭔가 떨어지는 놀이기구는 다 탈 수가 없었다.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냥 사람들에게
'낙하공포증이 있어.'라고 말했다. 그런 공포증이 있는지, 내가 정말 그 공포증인지는 사실 모른다.
아빠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차에 치어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 얼굴만 살아있었는데 의사는 길어야 3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지만 기적처럼 살아나서 앉을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실 수도 있게 되었다. 그 후로 36년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my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자전거 타고 경주 하이킹하기 (8) | 2024.11.13 |
---|---|
5. 낯선 사람 (7) | 2024.11.12 |
3. 젓가락질 잘 해야만 라면 먹나요 (7) | 2024.11.10 |
2. 나의 최애 호신용품, 우산 (10) | 2024.11.09 |
1. 가방이 무거운 아이 (8) | 2024.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