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ook

1. 가방이 무거운 아이

약간의 거리 2024. 11. 8. 19:03

나는 정리정돈이 잘 안되는 사람이다. 장거리 여행을 할때 여행가방을 싸면 아무리 최소한의 짐을 챙겨도 가방이 닫히지 않았다. 가방에 올라타고 다른 누군가의 힘을 발려서야 겨우 닫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내력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였다. 언제나 내 가방은 곧 터질듯 빵빵했고 무거웠다. 그러다가 서서히 지퍼가 맞물리는 부분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가방 무게로 언제나 어깨가 아팠는데 어쩌면 그 무게에 눌려서 키가 안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 네 가방 불쌍해. 주인 잘 못 만나서 고생이 많아.
했다.
하루는 '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런지 궁금하다'는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가방 속 물건을 점검했다. 친구 한 명도 자신의 가방 속 물건들을 꺼내며 비교해 봤다.  
교과서, 노트, 영어사전, 필통 그리고는 휴지, 손톱깎이, 연고, 밴드 정도였다.
- 영어사전? 좀 무겁지만 학생이 이 정도는 가지고 다녀야지.
- 휴지랑 연고, 밴드, 손톱깎이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 작고 두껍지도 않은데?
- 필통에는 뭐 들었어?

색색깔 볼폔과 샤프, 지우개, 형광펜, 컴퓨터용싸인펜 정도. 친구들보다 갯수가 많기는 했지만 그것도 무게나 부피가 그렇게까지 차이나는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고개를 갸웃갸웃 답을 찾지 못한채 다시 가방을 챙겼다. 그 중에는
- 손톱깎이는 왜 갖고 다녀? 휴지는?
- 그건  1년에 몇번이나 꺼내 써?
하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금도 미니백을 들고 다니는 여자들을 보면 대체 그런 작은 가방을 들고 어떻게 하루종일 외출이 가능한지, 그 가방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나는 핸드폰과 카드지갑 하나만 챙기려해도 그런 가방은 잠기지가 않는데 말이다.

직장인이 된 나의 가방에 항상 들어있는 물건이 두 개가 늘었다. 그것은 우산과 라이타이다.
우산을 돈을 벌면서 내 우산을 살수 있어 챙기게 되었고, 학교 다닐 때에는 우리집 애들 수 만큼의 우산이 없었다, 라이타는 이제 성인이라 소지가 가능한 물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냥수집이라는 취미가 끝난 후 품목 변경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을 쓸 일이 있을까, 말까한 물건을 나는 꼭 챙겨 다녀야했다.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까.
어쩌다 한 번 필요한 일이 벌어졌을 때 없어서 곤란하면 안되니까.
나는 내가 챙겨야하니까.
나 말고는 아무도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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