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DOC의 <DOC와 춤을> 가사에는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 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문화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지 않기 때문에 DJ DOC는 이런 노래를 하게 됐을 것이다. 하물려 외국인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려고 하고, 젓가락질을 잘 하는 외국인을 보면 기특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말이다. 결국 지금에는 에디슨젓가락이라는 것이 생겨서 너댓살만 되면 젓가락질을 학습시키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나는 젓가락질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 나이면 아무리 에디슨 젓가락과 같은 도구가 없었던 시절이라고는 해도 배웠을 법한데 말이다.
그 때에는 나보다 한살 위의 언니와 나만 외할머니댁에서 살고 있었다. 아빠가 광주에서의 사고로 병원에 있으면서 엄마는 아빠의 병간호를 위해, 학교에 다녀야하는 나와 언니는 외할머니댁에 맡기고 아직 입학 전인 동생둘만 데리고 광주 병원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댁에서 살던 때에 기억이 나는 사람은 할머니와 막내이모, 외숙모다. 삼촌은 가끔 봤던 것 같다. 외삼촌에게도 아들 두 형제가 있었고 그 중 큰 아이는 나의 막내 동생과 동갑인데도 신기하게 기억에 없다. 삼촌을 가끔 봤던 건 아마도 삼촌은 격일제로 근무하는 직장에 다니셨기 때문인 것 같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우셨던 외할머니 댁에서 가끔 바로 집앞에 있는 텃밭에서 토마토와 가지를 따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하루는 할머니가 검은보라색이 짙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예쁜 가지를 먹어보라며 주셨다. 생가지를 그때 처음으로 먹었던 것 같은데 정말 맛있었다. 어느 날 텃밭에서 그때 할머니가 주셨던 것보다 훨씬 크고 탐스러운 가지를 발견했다. 나는 몰래 그 가지를 따서 베어 물었는데 입전체에 독이 퍼지는 것처럼 아리고 아파서 그대로 뱉어 버렸다. 하지만 할머니가 주지도 않은 가지를 몰래 따 먹은 것이 들킬까 무서워서 우선 먹다 남은 가지를 안 보이게 땅에 묻고는 입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그 텁텁하고 갑갑한 것을 물로 입안을 휑거보고 하면서 지워내려고 했다.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가지를 먹지 않게 되었다.
외할머니댁에서 이모는 유일하게 언니와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던 이모는 월급날이 되면 과학동아 같은 어린이 잡지를 사와서 언니와 내게 보라고 줬다. 한 번은 아주 예쁜 잠자리 모양의 머리핀을 사와서 언니에게 선물로 주었다. 빨간 고추참자리 모양의 머리핀의 금색 테두리가 너무나 반짝거리고 황홀하게 예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니가 그것을 머리에 꽂았을 때 이모는 박수를 치며 예쁘다며 기뻐했고, 언니의 뿌듯했던 얼굴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참 후에 이모가 나의 표정을 읽었다. 이모는 미안해하며 다음달에 월급을 타면 내 것도 꼭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정말 다음 달 월급날에 이모는 나에게도 예쁜 머리핀을 선물로 주었다.
어느날 밤 잠결에 맛있는 냄새가 나서 눈을 떴다. 야근을 했는지, 늦게 들어 온 이모가 라면을 끓여서 먹고 있었다. 언니와 나도 라면이 먹고 싶어서 이모의 작은 저녁상 앞에 다가 앉았다. 과자 한 봉지를 사려면 논밭을 따라 30분은 걸어 나가야 겨우 작은 슈퍼를 만날 수 있는 시골이었다. 아마도 집에 라면 같은 것이 여유롭게 있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야근을 하고 와서 겨우 저녁으로 라면을 먹는 이모도 우리한테 그것을 나눠주고 싶지 않았을 터이다. 이모는
- 젓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한테는 라면 줄께.
라고 했다. 나는 그리고 언니도 젓가락질을 할 줄 몰랐다. 그런데 언니가 갑자기 상 앞으로 바싹 다가 앉더니 젓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모도 깜짝 놀라서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는 언니를 신기한 듯 보고만 있었다.
- 너는? 너도 젓가락질 할 수 있으면 라면 줄께.
언니는 내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고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장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분명 언니도 나처럼 젓가락질을 할 줄 몰랐는데 ......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 밥상에서부터는 나도 젓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됐다. 누가 가르쳐 준적도 없는데 가능했다. 질투는 젓가락질도 가능하게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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