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경주라는 도시를 산책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꿈이다.
'꿈'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바람, 그러니까 소망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주를 처음 간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그때는 학교에서 단체로 이리가라하면 가고, 저리가라하면 갔던 거고 그렇게 열심히 유적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단체관광버스를 타고 돌며 저~~쪽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작은 탑 같은 것이 첨성대라는 설명이 기억난다. 시험 때면 그렇게 중요하게도 문제에 나왔는데 내려서 가까이 가 보지도 않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첨성대의 작은 크기에 놀라고 실망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거리 곳곳에 유적이 있는 경주는 자전거를 타고 돌면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 친했던 친구가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자기는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렸을 때 가르쳐 주셨다고 했다. 친구는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것을 몹시도 안타까워하면서 자기 집 바로 앞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다며 가르쳐줄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한 발을 올리고, 반대발로 땅을 밀어 자전거를 출발시키면서 패달 위에 발을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자신이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줄테니 일단 출발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비틀비틀 제대로 서지 못하는 자전거 위애서 나는 몹시 공포스러웠고, 차마 남은 한 발을 떼어 페달에 올릴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 발을 올리면 기우뚱한채로 넘어져 버렸다. 나와 비슷한 키의 어린 여자아이는 자전거를 똑바로 잡아줄만한 힘이 없었다. 출발도 못해보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우리 둘다 포기를 선언했다.
- 괜찮아, 자전거 안타도 놀거 많아.
친구는 나를 위로하는 말인지, 자기를 안심시키는 말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더더 자라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남자친구는
- 괜찮아, 2인용 자전거가 있잖아.
하면서 자전거에 나를 태워줬다. 한강공원도, 일산호수공원도 자전거를 타며 빙빙 돌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자전거는 다시 탈수 없는 운송수단이 되어버렸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정말 좋아하는데, 영화의 끝부분에 이영애가 헤어진 남자친구 유지태를 다시 찾아온다. 나는 이영애가 유지태를 잊지못한 이유는 그가 이영애에게 운전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이건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고, 감독의 의도는 모르겠다). 홀로서기를 하게된 여자는 어엿한 하나의 객체될 수 있었던 것이다.(영화 중반에 여자는 다른 남자를 만날 때도 자동차를 타고 가고, 화가 난 유지태는 이영애의 자동차를 긁어 버린다).
어찌되었거나, 자전거의 이야기로 돌아온다면, '진정한 사랑은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주는 포근함이 아니라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울 수 없었다. 아버는 집에 누워계셨고, 오히려 내 고사리손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버지에게 당연히 받았어야 하는 사랑-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을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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