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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수녀님의 휴가

약간의 거리 2001. 8. 29. 23:41

흙냄새가 물씬 나는 비가 천둥과 함께 한차례 지나가더니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한결 시원해진 듯합니다.

오늘 저희집은 모처럼만에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시끄럽습니다.
많은 식구가 모인것도 아닌데 이렇게 소란스러운 건
수녀원에 입소한 제 동생이 휴가를 나왔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보름정도 함께 있을 겁니다.

좋다고 합니다.

입소한지 3개월여밖에 안된 카타리나를 휴가 내보내는 건 너무 아깝다고,
아직 수도원 생활에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혹여 바깥 생활이 더 좋아서 안돌아오면 어쩌냐고.... 그렇게 수녀님들이 걱정을 했다는데
제 동생은 그곳 생활이 참 좋다고 말을 합니다.

좋을만도 하죠.
그동안 살아온 길지 않은 세월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맘고생 않는 그곳이 제 동생에게는 편안할 겁니다.
어쩌면 이런 생활을 만들어 주시려고 그간 시련의 시간들이 주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들 준다고 선물도 잔뜩 들고 왔습니다.
또 수녀님이 김밥이랑 간식거리도 잔뜩 챙겨주셨는데
제 동생처럼 집도 서울, 수녀원도 서울이어서 한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하겠지만
멀리 지방이 집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세심하고 꼼꼼하게 챙겨주셨더라구요.
용돈도 받아왔다며 자랑을 합니다.

동생이 싸온 김밥이랑 오징어, 과자, 사탕, 간식들을 먹으며 얘기를 나눕니다.
돌아갈 때는 수녀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해야겠다고 하니까
수녀님들은 먹는 걸 가장 좋아하신답니다.
못먹는 것 없이 풍족하게 또 많이 먹는데
그런데도 틈만나면 먹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사탕 한 봉지를 이틀이면 모두 먹어 치운다고 합니다.
오 예스 라는 과자를 좋아하는 수녀님 한 분은 간식에 오예스가 나오면 앉은 자리에서 세개쯤은 거뜬히 먹는다고 합니다.
이번 달에 식사당번이었던 제 동생은 그냥 먹는게 싫어서 식당에서 우유 한잔으로 간식을 때우곤 했답니다.

제 동생 생각에는 아무때나 생각날 때 꺼내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식사시간, 정해진 간식시간에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도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그것말고도
세상과는 단절된 생활을 한다는 느낄 수 없는 허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엽기적인 그녀>가 꼭 보고 싶다고 해서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벌써 본 영화지만,
제가 이미 본 거라고 해도 자꾸만 혼잣말로 보고싶었던 거라고 읊조리고 앉아 있길래 그러기로 했습니다.

제 친구가 웃네요. 수녀님이 그런 코믹 영화를 본다는 게 재미있다고......

뭔가 많이 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함께 할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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