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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아기

약간의 거리 2004. 1. 28. 14:29

동생의 아기...

 

낯선 표현이다. 보통 사람들은 '조카'라고 부를테니까.

임신 9개월이 된 동생

 

-언니랑 우리 엄지랑(뱃속 아기의 애칭이다)은 잘 맞을 것 같애. 원래 원숭이띠랑 쥐띠랑은 잘 맞대. 그치?

-글쎄... 걔가 내 말을 잘 들어야지. 내 말 잘 들으면 잘해주고, 아니면 국물도 없어.

-치~ 왜 그래. 나한테는 안 그러면서...

-넌 내 동생이고, 걔는 한 다리 건너잖어.

 

 

며칠 전에는 꿈을 꿨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만삭이 된 동생이 우산도 없이 가는게 안쓰러워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씌어줬다.

멀리 동생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 옆에 아이 하나가 더 있는 거다.

동생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거다.

꿈속에서 꽤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는데 나는 조카가 같이 있었다는 걸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거다.

 

 

꿈 이야길 해 줬더니 동생은 이해가 안된다며 퉁퉁거린다.

사촌동생들도 다 이뻐하고 데리고 놀면서 왜 자기 아기한테만 그렇게 야박하냐는 거다. 말을 잘 들어야만 잘해준다 하고,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고...- 아기가 발차기를 하면 배가 움직이는 데 사람들은 그때 배를 만지게 해 주면 모두 신기해 하는데, 유독 나만 신기해 하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단다-

그치만 진짜로 하나도 안 궁금할 걸 어쩌란 말이냐~~~~~~~~~~

 

 

어제는 드디어 동생이 아기용품을 장만해 가지고 왔다.

이불, 베개, 옷, 우유병, 손수건, 비누,...... 그 중 내 눈을 확~~~ 잡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기저귀 가방이었다.

데님천으로 만들어져서 크기도 하고, 늘 내가 갖고 싶어 했던 모양으로  아주 실용적이며 괜찮게 생겼다.

 

-야, 이거 내가 갖고 싶어 했던 거잖어.

-언니, 좋지? 이쁘지?

-응. 이거 나 조. 그리고 넌 새로 사.

-안돼. 한꺼번에 사면서 20% DC 받은 거란 말이야

-그니까... 넌 다시 가서 하나 더 산다고 20% 또 해달라고 해. 난 절대 DC 못받잖어.

-T.T

 

시큰둥해진 동생.... 이걸 언니한테 줘버리면 다시 할인받아 살 수 있을까? 없을까? 고민에 빠졌다.

 

 

 

나의 심통맞음을 잘 아는 동생은 내내 걱정이다. '저 언니가 진짜 내 아기를 구박하는 거 아닐까?'

 

 

문득, 드라마속 대사가 생각난다.

-할머니, 내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

-솔직히 말해도 돼?

-응

-니 엄마. 왜냐면 내 딸이니까.

 

나도 그렇다. 막상 아기가 꼬물락거리는 것이 눈에 보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동생이 좋다.

내 동생이니까.

 

'동생의 아기'는 .. 동생이 소중히 여기니까 잘해주기는 할 것 같지만...

애틋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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