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아빠이야기2

약간의 거리 2004. 1. 20. 00:17

1

아빠는 요즘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신다.

12시쯤 잠이 들고,

새벽 두시가 조금 넘어 전화를 하셨고,

다시 4시쯤 찾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서 두시간을 못 버티겠다.

 

나는 더 오래전부터 무서웠었다.

방에서 스탠드를 켜고 책을 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문밖을 보고,

아빠방에서 다리 운동을 시켜주면서도 자꾸만 문밖을 쳐다본다.

 

누군가가 그 곳에 서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저는 더 오래전부터 무서웠는 걸요...

그렇게 혼자 생각한다.

 

 

2

아빠 눈에 백내장이 왔다고 엄마가 말씀 하셨었다.

당뇨의 합병증세다.

그러면서 설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해서든 병원에 모셔가야겠다고 하셨다.

 

 

3

아빠 방 TV 채널은 요일과 시간에 따라 고정되어 있다.

어떤 프로그램을 챙겨본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마치 일과표를 잘 지키는 사람처럼 아빠는 그날, 그 시간이 되면 그 채널에 TV를 고정시킨다.

내가 다리운동을 해 드리는 시간에는 SBS에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가끔은 '대장금'을 보지 않는 아빠한테 불만을 갖기도 하고,

또 내가 보지 않는 TV프로의 내용을 줄줄이 꿰게 되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은 늦은 시간인데도 드라마가 하고 있었다.

-어~ 아직도 드라마가 하네요.

-응 두개 계속한다.

-아... 설때 영화보려줄라고 미리하나봐요.

-무슨 영화?

-명절되면 밤에 영화 보여주잖아요.

-응... 근데 난 TV도 잘 안보인다.

 

 

-아빠 눈이 백내장인가봐. 눈동자를 반은 덮었더라구

 

나는 짐짓, 며칠전 엄마가 한 말은 모르는 척을 했다.

-눈도 침침해 지셨어요? 시력이 떨어졌나보네

-응 윤곽만 보여

-그렇게나 안 좋아요? 안과 가셔야겠네.

-뭐 눈만 안 좋은 것도 아니고 다 아픈데...

-그래두요~ 종일 방에만 계시는데 TV라도 봐야 덜 심심하시죠. 명절 지나면 꼭 병원 가세요

-응

 

왠일로 아빠가 아주 쉽게 "응~" 이라고 답을 하신다.

병원이라면 ㅂ만 나와도 사래질을 하던 분이.

 

휴~ 안도를 하면서도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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