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할머니의 귀걸이

약간의 거리 2020. 7. 15. 19:59

횡단보도 앞에 두어 달에 한 번씩 액세서리 좌판을 펴는 노부부가 있다.

대체로 푸른빛이 도는 자개 같아 보이는 재료로 만든 귀걸이, 팔찌, 목걸이, 브로치 같은 것들이다.

일단 나는 푸른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가지고 있는 옷이든 액세서리든, 어떤 물건도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 노부부의 물건들에는 눈이 갔다.

그래서 두어번인가 귀걸이도 사고, 끼지 않을 줄 알면서도 반지도 사고, 브로치도 샀다.

특히 야자수 나무 여러 그루가 달려 있어서 길게 늘어지는 귀걸이는

한창 길게 늘어지는 귀걸이가 하고 싶을 때 사서 지난여름 내내 잘하고 다녔다.

어깨에 살짝 닿을 듯 말듯해서 짧게 머리를 자르고 옷을 단순하게 입어도 엄청 꾸민듯한 느낌을 줬다.

밝은 파랑이 아니라 군청 빛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귀걸이를 화사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게 좋아서 정말 열심히 했는데

지난해 오월에 회사에서 하는 축제에 갔다가 한 짝을 잃어버렸다.

땀을 닦을 때 날아간 것인지, 땀에 젖은 티셔츠를 갈아입을 때 빠져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슷한 것을 다시 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더라도 짝이 될만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 후로 노부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가게라도 운영을 하시려나?

언제쯤 여기 또 한 번 와 주실까?

코로나 때문에 아예 외출을 못하시나?

그럼 물건은 어디서 파실까?

 

그렇게 가끔씩 생각을 했다.

 

오늘, 늦은 점심시간을 맞아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건너편에 자그마한 가판이 보였다.

'할머니다!'

나도 모르게 신호가 바뀌자마자 마구 달려가서는

'할머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한동안 장사를 못했지.'

담담한 할머니의 말씀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네? 어쩌다가요? 죄송해요. 할머니 많이 힘드셨겠네요.'

나도 모르게 위로도, 사과도, 뭣도 아닌 말을 지껄였다.

 

할머니는 이것저것 내게 어울릴만한 것들을 추천해 주셨다. 예전에는 이건 할아버지 몫이고 할머니는 옆에 앉아서 웃고만 계셨는데.

나는 할머니가 처음에 추천해 주신 귀걸이를 골랐다. 그리고 할머니는 덥석 귀걸이 하나는 더 공짜로 쥐어 주셨다.

'아니에요. 이거 얼마나 한다고. 하나 사는데 하나를 공짜로 주시면 어떻게 해요.'

'에이, 그런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오른쪽 위에 귀걸이 색깔이 가장 진짜 색에 가깝다. 나머지는 불빛에 제 빛깔이 안나와서 아쉽다. 부엉이 정말 예쁘다

 

결국 나는 귀걸이 두 개를 들고 점심은 김밥을 한 줄 사 들고 들어왔다.

사무실에 오자마자 할머니가 주신 귀걸이로 바꿔 달았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마음으로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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