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비가 좋아서, 그만

약간의 거리 2020. 8. 6. 11:44

비 오는 것을 왜 좋아하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우산이 나의 안전망이었던 걸 보면

아마도 내 우산을 갖게 되었을 때였지 싶기도 하다.

이제 나는 우산이 있는 사람이고,

비가 와도 걱정이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정말 그때는 왜 사람 숫자대로 우산이 있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건

비를 맞으면서 자는 것이다.

 

최근에 비가 많이 오기는 했지만 들이치는 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폭우처럼 쏟아져 창문을 열어두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지난 밤 오랜만에 창문을 열어둔 채 잠이 들었다.

밤새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단잠을 잤는데

새벽에 엄마가 난리가 났다.

- 네 방만 창문을 안 닫았잖아. 물이 이렇게 고였는데 어쩌면 좋냐

엄마는 걱정이 한 가득한 목소리로 걸레질을 하기 시작하셨는데

나는 엄마의 목소리도 듣기 좋고, 비가 오는 소리도 듣기 좋아서 히히히 웃으며 계속 잠을 잤다.

 


아침 뉴스를 보니 사방이 물난리

밤새 정말 많은 비가 내린 모양이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 밤새 한 숨도 못 주무셨다며

쾡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복숭아를 깎기 시작하셨다.

 

나는 창문을 열어 놓은 것도, 새벽에 엄마 혼자 물 치우느라 고생하는게 그냥 자 버린 것도 미안해서

그러네도 이상하게 오늘은 계속되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좋아서

두부 부침에 간장이 없는데도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비가 정말 많이 오긴 했다. 여기는 안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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