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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많은 엄마의 컴퓨터

약간의 거리 2020. 9. 1. 15:30

우리 엄마의 컴퓨터는 L사의 일체형이다. 모니터는 터치스크린이고, 무선키보드와 마우스까지 하얀색으로 아주 깔끔하고 단촐하다.

한 달에 서너 번 은행거래를 할 때만 켜지던 컴퓨터는 켤 때마다 시스템이나 백신프로그램이나 특정 사이트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뜬다. 그래서 어떤 날은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전에 몇번씩이나 컴퓨터가 재부팅이 되어야하고, 또 어떤 날을 끄고 싶은데 꺼지지가 않다가, 며칠 후에 또 사용하려고 켜 보면 아직도 업데이트가 안 끝났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자기 컴퓨터에 불만이 많다.

 

요즘에는 컴퓨터를 배우시다보니 과제가 있어서 하루에 한 번씩을 컴퓨터를 사용하시는데 어쨌든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하루에 한두번은 불려간다. 마우스가 없거나 글자가 써지지 않거나가 대부분의 경우인데, 예를 들면 엑셀을 사용할 때 셀 선택과정 중이거나, ppt를 사용할 때 영역이 잘 못 잡혀 있다거나 그럴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증상이 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하고 싶은 작업이 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앞뒤 상황을 보면서 파악을 해야 하는데 뭐든지 결론은 컴퓨터가 좋지 않아서로 결론이 나는 엄마의 화법이 나도 그냥 피곤하다.

 

얼마 전에도 엄마의 호출이 있었다. 마우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 이거 봐, 마우스가 안돼. 그 마우스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 표시가 안 보여. 방금까지 됐는데. 아~ 진짜, 이거 시험 본다고 해서 연습 좀 해 보려고 했는데 그냥 꺼야겠다.

 

마우스패드는 뒤집어져서 바닥이 밀림 방지가 되어 있는 고무판이 위쪽으로 올라와서 그곳에서는 마우스가 굴러다니지도 않는 지경이었고, 어쨌거나 마우스가 안나타나기는 했다. 나는 내 노트북에 끼워져 있던 무선 마우스를 가져다 꽂았다.

- 이건 잘 되네. 엄마 그냥 이걸로 써.

 

나는 아주 간단하게 마우스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 주는 것으로 수리를 마쳤다.

그리고 일 주일 즈음이 지났는데 그날도 또 엄마는 컴퓨터가 안된다며 호출했다.

- 이거봐. 방금까지 됐는데 갑자기 안돼

- 뭐가 안돼?

- 글씨가 안 써져. 방금까지는 써졌는데 안 나와.

엄마가 켜 놓은 엑셀 화면에는 아무것도 써져 있지 않았다.

- 방금까지 됐다며 아무것도 없는데

- 내가 다시 하려고 지웠어

 

이것저것 눌러봤지만 키보드가 먹지 않았다. 나는 일단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켜 보자고 했다. 그리고 한 참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서

- 엄마, 컴퓨터 아직도 안 켜졌어?

- 아니 껐다가 켜도 안되길래 그냥 껐어.

- 그게 무슨 말이야. 다시 켜졌으면 나를 불러서 보라고 했어야지. 난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 그래도 안돼서 껐다고

- 그럼 고칠 수가 없잖아. 키보드가 안되는 거면 내꺼 유선 키보드 연결해서 되는지 보려고 했단 말이야.

 

그때 주말을 맞아 집에 와 있던 동생이 등장했다.

- 모야, 이 사람들. 대화 속에 답이 있는데 계속 둘이 헤매고 있네

-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둘 대화 속에 답이 있다고?

- 그럼. 무선 키보드를 컴퓨터가 인식을 못한다, 유선 키보드는 된다, 그럼 무선 키보드에 건전기를 교체해야지

 

엄마랑 나랑은 둘이 동시에 너무나 놀라서

- 키보드에 건전지 들어가?

하고 물었다.

동생이 키보드를 가져와 바닥을 뒤집더니 건전지 들어가는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새 건전지를 끼웠더니 정말 키보드가 작동했다.

- 가만... 그럼 지난번에 마우스도 건전지 때문이었을까? 엄마 마우스 어딨지?

- 몰라. 네가 갖고 나갔는데

 

고민 1도 없이 답하는 엄마가 살짝 얄미웠다. 그런데 마우스는 어딨지?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어렴풋이 플라스틱 분리수거 봉투에 무언가를 버리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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