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출근날부터 인간에 대한 마음을 조각하나 남기지 않고 와장창 깨버리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하는 곳은 센터장이 지난 연말까지 임기를 다하고, 자리의 특성상 공개임용이라는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물론 전 센터장이 재임할 수 있어 공개임용에 응모한 상황이었다.
12월 31일에 나는 반차를 쓰고 오후 2시에 이른 퇴근을 했다.
사람들과 한 해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 본관 사무실을 갔는데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코로나19 상황에 종무식도 없이 끝나는 날이고, 더러는 이미 휴가를 내서 나오지 않았고, 연간 사업 마무리는 다들 끝나 있는 상황이라서 어쩌면 조금은 소란스럽고 들떠 있는 분위기를 상상했던 나는 '뭐지?'하며 괜히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저쪽에 앉은 동료가 뭐라고 싸인을 주기는 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입모양을 볼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도 답답했던지 결국 내 곁에 다가와 아주 낮은 목소리로
- 소장님 떨어졌대.
하고 이야기를 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진짜? 왜? 그게 말이 돼?
- ......
아, 이 무거운 침묵. 누구 하나 숨소리라도 들리까 날선 긴장감이라니!
- 아니, 아무리 블라인드라고 해도 결격사유가 없는데 그냥 안 뽑을라고 작정하고 골라낸 거 아냐?
- 그러니까.
'앗, 나는 퇴근할 건데... 이 상황을 어쩌지?'
아는 척을 하기도 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뭐라고 말을 하나? 이제 두 번 다시 못보는 사람이니 퇴직자에게 하는 인사를 하고 가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냥 못 들은 걸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공식적으로 듣지 못했고, 더구나 오늘이 서류결과 발표라는 것도 아예 몰랐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우리 센터장에게는 약간 계륵 같은 존재인 사람이다. 워낙에 싫은 건 싫은 거고, 아닌 건 아닌 거라고 말하는 사람인지라 소장도 나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가끔 드러나는 실적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특히나 재임용을 앞둔 지난 연말 동안에는 전에 없이 나에게 친절했드랬다.
소장 덕분에 지난 한 해가 나에게도 얼마나 스펙터클 했는지 모른다. 2/4분기 말에는 매 분기마다 하는 개인 면담을 진행하면서 '이직 계획은 없나?'라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그만두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쳐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냈었다. 그때 '6개월이면 임기 끝나는 사람 말에 흔들리지 마'라는 동료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지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장은 한 때는 내게 엄청난 응원과 격려를 쏟아부어주던 힐링같은 존재였다. 이 직장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소장이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초창기의 인연 때문에 그 사람이 보여준 나와는 너무 다른 가치 충돌들과 실망스러운 많은 모습들에도 근본에 대한 긍정과 희망이 있었다.
소장의 임용 도전은 내게는 끊이없이 두 가지 맘을 갖게 했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 새로운 사람으로 인해 조직이 조금은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구관이 명관이라는 오래된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닐 거라는, 그러니 어쩌면 그냥 지금의 소장이 계속 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염려. 후자는 분명 '염려'임에도 이 '염려'에 기대는 마음이 0.1 정도는 더 많았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류에서 탈락을 했다니!
사람의 끝이 이렇게 되는 건가, 하는 허무함과 서류에서도 탈락시킬 만큼 인사가 잘못되었나? 하는 기관에 대한 의심으로 연말을 보냈다.
새해 첫 날, 차를 마시며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소장의 서류 탈락은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거짓말이었단다. 직원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 그럼 사실을 언제 말한거야.
퇴근할 무렵이 되어서 마지막 인사를 하던 직원 중 한 명이 참던 울음을 터뜨리자 그제서야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한 말이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무려 4시간 동안, 직원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숨막히게 앉아 있는데 파티션 뒤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을 그 사람을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새해 첫 날부터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한톨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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