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디어 평양

약간의 거리 2006. 12. 15. 10:12
(2006/일본)
장르
드라마, 가족
감독
출연
 
영화 줄거리
“안녕!” 헤어짐이 아닌 만남의 인사이고 싶습니다.나는 ‘재일 교포의 메카’로 불리 우는 도시,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빠 셋의 귀여운 막내 여동생으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15살에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일본으로 오셨고 해방을 맞은 후 정세에 따라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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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내게 '재일동포'라는 말은 '재미교포'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그건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멀지만 가까울 것(가까워야만 할 것) 같은 미국만큼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내가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재일교포라고하면 다들 조총련이라고 생각했고, 조총련이라면 당연히 빨갱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남과 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악수를 할 만큼 남과북의 관계가 완화되고 북한 사람도 우리 동포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조총련 역시 그저 나와 다른 이념을 지지하는 것일 뿐이라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하지만 감정적으로 다가서지지 않은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여전히 재미교포와 재일교포는 다르고, 재외국민의 선거권이나 기타 등등의 어떤 것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수십년이 지난 세월동안 국적을 변경하지 않은 재일교포들이 일본에 너무나 큰 차별을 받고 있는 것에는 무관심한...

 

영화는 나에게 두 가지를 던져주었다.

하나는 '통일'에 무관심한 것은 죄악이라는 것

둘은 '아버지'

 

45년 해방이 되고, 남쪽엔 미국, 북쪽엔 소련이 들어와 신탁통치를 하게 되고, 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53년 휴전과 함께 여전히 이념이 다른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재일교포의 90% 정도는 남한에서 건너간 사람이고, 이 다큐영화의 주인공인 영희감독의 아버지 역시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이다. 그가 일본에 건너갔을 때, 그리고 아들 셋을 북으로 보냈을 당시 (71년이었다) 그들은 금방 통일이 될 거라고 믿었고, 그 당시 남한보다는 북한이 그것을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소련의 원조와 함께 북한이 재일교포들에게 많은 지원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들들을 보낸 것을 후회하는 아버지.

딸이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겠다는 것을 허락하는 아버지.

그건 세계 곳곳의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해 가듯 그가 믿던 이념, 신념이 무너진 것이 아니다. 그에게 남한과 북한은 그저 '조선'일 따름이다. 그래서 그는 딸의 남편감은 '조선인'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조선말을 아주 잘하는 일본인과, 조선말도 못하고 김치도 못 먹는 조선인이 있다면 아버지는 딸이 후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나중에 '조선'에 묻히고 싶어 한다. "제주도?" 하고 묻는 딸에게 아니라고 한다.

그가 "북"에 묻히고 싶은 건, 그가 여전히 김일성과 김정일을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추앙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의 아들 셋이 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라고... 그런 거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영희 감독은 복잡한 국적을 정리하고 한국 국적을 갖고 싶어하는데.. 그녀가 지금은 그녀의 원대로 그렇게 정리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선뜻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국적이 정리되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북에 있는 오빠들을 만나기 위해 만경봉 호에 오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북에 있는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신념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체제를 인정하고, 또 언젠가는 통일이 될 거라는 믿음이다. 엄마의 바람은 아주 소박하다. 수십개의 박스에 손난로와 각종 문구용품을 바리바리 싸는 어머니의 바람은 일본과 북한의 국교가 정상화되어서 그저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것.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영희 감독.

북에 살고 있는 아들 셋과 며느리 손자, 친척들, 그리고 고향이 같은.. 지금은 북에 살고 있는 지인들... 50여명의 사람들이 71년 북으로 간 이후 지금까지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원조를 하고 있는 건 어머니와 아버지인데도 수령동지 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울분이 터지는 영희 감독.

그녀가 이 영화의 제목을 '디어' 평양 이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평양은 분단된 또 하나의 나라의 수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건재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의 수도, 미국이 악의축이라고 명명한 아무개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니라, 그저 언제나 그립고 마음이 짠 해지는 가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영희 감독과 아버지는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똑같이 평양이 '디어'이기 때문에...

 

 

아버지...

영희 감독이 처음 국적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그것은 아버지의 삶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에서 금기시 되는 단어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가 영희만은 한국 국적을 가져도 좋다고 허락한다. 흔들흔들 카메라를 들고 때로는 발장난을 치면서, 엄마가 싸주는 음식을 받아 먹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를 뒤쫓아 가면서 1년여 동안 찍은 다큐... 영희 감독은 이제 아버지와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짤막한 아버지의 답변들, 무뚝뚝하게 들리는 목소리, 병상에 누워서 힘겹게 단어를 토해내는 아버지.

나에게도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할 시간들이 있었다.

 

늘 무섭고,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 먼저 말을 건넨 사람은 아버지다.

가끔 동생은 이야기했다.

"아빠는 언니가 제일 편한가봐. 언니한테는 말도 잘하네. 나는 시켜도 대답도 잘 안하는데"

"나랑도 별로 하는 말 없어."

"그래도 언니한테는 아빠가 먼저 말 걸잖아."

 

아빠가 낮에 있었던 조카와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엄마가 자기를 구박한다고 하소연할 때,

그때 나도 영희 감독처럼 엄마의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는지라도 물어볼 걸,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걱정했을 아내... 그 아내에게 평생 고마웠지요? 하고 물어봐 줄껄.

 

병상에 누워있는 영희 감독의 아버지가 다시 일어나시길... 그래서 꼭 한 번은 더, 평양에 살고 있는 아들 손자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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