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싸이보그라도 괜찮아

약간의 거리 2006. 12. 18. 11:51
영화 줄거리
우리 둘만 아는 비밀, 그녀는 싸이보그다! 엉뚱한 상상과 공상이 가득한 신세계 정신병원.이곳에 형광등을 꾸짖고 자판기를 걱정하며 자기가 싸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 '영군'(임수정)이 들어온다. 남의 특징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순’(정지훈)이 새로 온 환자 영군을 유심히 관찰한다. 싸이보그는 밥 먹...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괜시리 바쁜 요즘...

보고 싶은 영화가 정말 많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주가 지나버리면 내리는 거 아냐? 할 즈음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하나씩 보게 된다. 그래도 지리상의 여건상 못보고 지나가는 영화가 많아서 안타까운 요즘이다...

 

극장에는 겨우 열명 남짓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나마 세 사람이 중간에 나가 버렸다. 난 정말 많이 웃으면서 봤는데... 어떤 사람은 <판의 미로>를 볼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가 몇 세 상영가 인지 궁금해 했다. 그네들과 나의 자리는 극장의 중간과 끝이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 질문이 내게까지 들려버렸다. 그러니까 살짝 수위가 높은 장면이 있었다는 이야기? ^^

 

엄마에게 비밀을 들려주는 영군. 엄마가 되묻는다.

-무만 먹고 싶어?

-(도리도리)

순대를 소금에 찍어 입에 넣어주는 엄마. 받아 먹는 영군을 보며 안심한다. 그리고 싸이보그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대신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다른 사람만 모르면 괜찮다고. 생각해 보라고, 딸이 싸이보그면 누가 순대국을 먹으러 우리 집에 오겠느냐고.

다시한번 괜찮다며 어깨를 두드려주고 엄마가 돌아서자 영군은 얼른 입안의 순대를 뱉어낸다.

 

세상에는 그런 일이 정말 많다. 나만 알고 있으면 괜찮은 일. 다른 사람에게 티내지만 않으면 괜찮은 일. 하지만 사람이 어찌 그런가? 본의든, 본의 아니게든 티가 나게 마련. 그치만 항상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오듯이, 장점이 때론 단점이 될 수 있듯이, 이렇게 남에게 발각되지 말아야 할 일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진짜 "내 편"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그런 영화다.

싸이보그라도 괜찮아, 용도가 불분명해도 괜찮아, 수명만 이어진다면 괜찮아.

 

사실 모.. 우리가 자신을 싸이보그라고 까지야 생각하지 않지만, 영군처럼 형광등이나 자판기나 괘종시계와 이야기 해 본적은 있지 않은가? 만약 없다면, 그렇다면, 뭐.. 집에서 키우는 화분에 자란 예쁜 꽃이나, 좋아하는 곰인형과는?

그러니까 영군이 정말 사랑하던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에너자이너가 되기 위해 자기에게 전기 충격만 가하지 않았다면 이건 그냥 우리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름의 공상세계에 불과할 뿐이다. 단지 우리들 아무도 내가 잠자기 전 곰인형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영군의 엄마처럼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나만의 비밀이어야 한다는 것을. 만약 그게 뽀롱나더라도 생각이 공유되는 친구가 한 명쯤만 있다면 싸이코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싸이코라 불러도 당당히 "싸이코가 아니라 싸이보그라니까요"하고 말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 편 을 만나기 너무나 힘든 세상. 싸이보그라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지만 싸이보그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일순을 만난 영군.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진정한 로맨스다.

 

 

사족1. 몇몇 캐릭터의 생김과 말투(특히 영군 엄마), 클로즈업한 이미지, 싸이보그 기계가 돌아가는 영상 등은 박찬욱의 전작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참 닮았다.

 

사족2.극장을 나오니 두 사람의 설문조사원이 있었다. 내게도 물어봐 주었다면, 너무나 박찬욱스러운 정말 재밌는 로맨스 영화였다고 말해주었을 텐데... 몇면 안되는 관객 중 내게는 그런 질문을 던져주지 않더라~ 아쉬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