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왜 프라다를 입을까요??
영화 홍보에 아마도 이런 카피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를 봐도 나오지 않는다. 그치만.. 이 영화의 모델이 되었던 <보그>지의 편집장은, 이 영화의 시사회 자리에 프라다를 입고 나타났다고 하니... 아마도 프라다가 명품 중의 명품이어서 일까?
아무튼, 어떤 이는 아름다운 여주인공과 명품을 보는 재미가 있다! 고 했는데, 도통 명품을 모르는 나같은 이에게는 예상했던 대로 그런 재미는 없었던 영화. 다만 메릴 스트립이 프라다 가방을 들고 있는 것-흰 핸드백에 프라다라고 써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과 신입 여직원이 치렁치렁 한 목걸이에 샤넬 마크가 도드라졌던-회사 동료들 덕분에 그나마 알게된- 딱 두 개의 명품을 본 기억이 난다.
늘 갖는 궁금증이지만, '명품'이라는 건 '왜?' 명품이고 '누가?' 그것들에게 명품이라고 이름 붙였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우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영화 속의 '악마'는 누구일까?
런웨이의 편집장?
런웨이에서 일하는 사람들?
명품을 쫓는 사람들?
영화의 말미에 '그녀가 남자라도 그랬을까요?' 하는 질문이 나의 답이다.
두 번 이혼당(?)했고,
회사는 이미 궤도에 올랐으니 비싼 월급을 주며 잡아둘 이유가 없는, 하지만 회사서 그런 꼼수를 쓰고 있다는 것도 진즉에 알아채서는 다른 수를 미리 써 놓을 만큼 치밀한 그녀...
그녀가 아니라 "그" 였다면, 악마로 불리지 않았을 거다.
이 영화의 제목에서는
악마=프라다=명품=나쁘다
라는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더라도 처음 런웨의 편집장 비서로 취직한 그녀는 말한다. 머리는 비었는데 명품만 쫓는 사람들이라고... 영화속에서는 일명 "딱딱이"라고 부른다.
편집장도 말한다.
패션을 아는 것들은 머리가 나빠서, 이번엔 뚱뚱해도 머리 좋은 애 한번 써 보려 했다고... 그리고 머리 좋은 그녀는, 그녀 나름의 패션감각이 있다 생각하고, 그녀의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패션계 종사자들의 눈에는 참 한심한, 더구나 그들이 공들여 만들어놓은 패션까지 혐오스럽게 만들만큼 감각없는 여자다.
이건 완전 예전에 우리가 '서울대생 치고 이쁜 여자 없자나!' 한 것과 동일한 마인드다. 김태희를 거점으로 하여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혹자는 얼토당토 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자, 그렇다면 과연 명품을 입는 것은 나쁜 것인가?
영화 속 주인공은, 어느 순간부터 명품에 하이힐을 신게 되었고, 일이 너무 바빠서 남자친구의 생일도 챙겨줄 수 없었고(잊지는 않았다-이게 중요한 거 아닌가! 더구나 내내 초조했다-이게 더 중요한거 같은데...), 그래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넌 변했어!' 하는 비난과 함께.
그녀는 변했다.
그녀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환경이나 노동문제 같은데 관심을 가진, 패션과는 좀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진 여자였다.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해야 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하이힐이라는 건 당치도 않으며, 치렁치렁 이브닝드레스 같은 걸 입고 갈 자리는 평생에 한번도 생기기 않을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패션지 편집장의 비서이다.
그녀는 매일같이 명품으로 휘감고, 하이힐을 신고 자선파티같은 곳을 간다.
그렇다면 자선파티에 간 그녀가 하는 일은 무얼까?
그녀는 그림자처럼 자신의 편집장 뒤를 따라 다니며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남들에게는 들키지 않게 귀띰해준다.
편집장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 해 주고, 밥을 배달시키고, 커피를 배달한다. 전화를 연결해주고, 뭔가 당장 준비시켜 놓아야 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때는 "이봐요, 여긴 미란다라구요!" 라고 말한다.
그녀가 애시당초에는 패션에 관심이 없었을지라도, 업계에 종사하면서 관심이 생겼을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의 상관같은 편집장 자리를 꿈꾸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을까?
처음엔 누군가 챙겨주는 명품 옷을 걸쳤지만 어느새 혼자서도 멋진 패션을 차려입을 줄 알게 된 그녀는, 단지 옷만 번드러지게 입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변했다.
더이상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도 없고,
글을 쓰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아니 사실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시간이 도무지 없었던 것 뿐이다.
애시당초 일을 열심히 한 것은 짤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짤리지 않고 일년만 버티면 그 경력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곳에 기자로 당당히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의 그녀는 꿈이 없다.
짤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그것이 "왜?" 두려운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가 변한 건,
그녀가 명품 옷을 휘감았기 때문이 아니고,
그녀가 남자친구의 생일잔치에 오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아빠와의 저녁식사에서도 회사일을 하기 때문이 아니고,
일로 만난 남자와 가볍게 입을 맞추었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 그녀는 명품을 그저 '명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지는 않지만,
파티에서 나눠주는 명품 옷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출장에 목숨을 걸고 있는 그녀의 선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그런 모습으로 가는 건 왜 나쁜가?
명품을 쫓아서 나쁜가?
명품을 쫓는 것이 왜 나쁜가?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돈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진 돈에 맞는 소비를 해 줘야 세상을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돈 많은 사람들이라면 몇백, 몇천씩 하는 명품도 좀 척척 사주시고... 제발 협찬받지 말고 말이다.
그렇게 써주시면 좋다. 그래서 나름 명품을 알아보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자리에서 기죽지 않는다면 정말 좋은 것 아닌가!
그리고, 예쁘고, 키크고, 돈 많은 사람이 굳이 또 머리까지 좋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하다.
요즘은 뭐든 하나만 잘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녀가 명품을 휘감을 능력이 되고, 또 그것을 멋나게 코디할 능력까지 갖췄다면 다른 능력쯤은 없어도 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굳이 남의 비서로 들어가 뒤치닥거리 할 일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재능을 찾아가면 된다.
어찌되었거나 우리의 그녀는 말이다.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적인 사건과 잠시의 여유 시간을 통해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남자곁에 다시 평범한 복장으로 돌아온다.
명품이 나쁜건,
아마도... 그녀가 명품을 걸칠 만한 부자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왜냐면 그녀의 남친은 주방 보조였고, 그녀의 친구들도 그닥 잘 나가지는 못했으니까.
그녀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평범한 어느 저녁 맥주500잔 놓고 건배를 외치며 서로의 잘나지 못한 직업을 놀려주는 그냥 그냥 평범한 이들 이었던 거다.
명품이 나쁜게 아니라 분수를 모르고 사는게 나쁜 거였나보다.
그렇지만 말이다,,, 정말 정말 돈은 없지만,
명품이 너무너무 좋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게 명품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디자인이며 색깔이며 너무너무 내 스타일일땐 어떻게 해야하지?
그래서 나는 말이다,
A급 짝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장인정신을 높이 산다.
그들이 가끔 뉴스에 등장할 때면 가슴 한켠이 너무너무 아리다.
저 사람들... 뭔가 육성해서 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정말이지 없는 걸까??
영화를 보는 중간에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다이어트 의욕이 마구 솟아나.
-으응~
건성으로 대답을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같은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왜? 하고.
이럴 때 난 정말 너무 느린 것 같다.
44가 아니라 구박덩이던 여주인공이, 66에서 55가 되었다며 허리라인을 잡아줄 때의 그 자신감 넘치는 행동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는 커녕, 자극 받은 다른이가 하는 말조차 이해하지 못하다니!
무수히 많은 명품들이 눈 앞을 지나갔다고 하는데.. 여전히 난 그냥 예쁜게 좋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