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가야할 때

약간의 거리 2004. 7. 30. 17:15

 

2년 반 전>

 

 

- 그렇게 힘들면 그냥 잡어

- (도리도리)

- 으휴...

- 괜찮아요. 안 힘들어요

 

 

그때 나는 내색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아저씨는 알고 있었나 보다.

그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2달 동안 매일 같이 울고 다녔다는 걸.

 

버스가 좋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움이라는 건 항상 혼자 있을 때 밀려드는 법이다.

잠을 자려고 방안에 누워 있을 때라거나

일이 끝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차에 탔을 때.. 말이다.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지하철 에서는

결코 주체 안되는 그리움과 서글픔을 처리할 수 없지만

모두가 앞을 보거나 창밖을 보는 버스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그 후 나는 간혹가다가

버스에 홀로 앉아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슬픈 눈을 발견하면

조용히 시선을 피해 줄지 알게 됐다.

 

 

***

 

 

- 그때 왜 저더러 잡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됐잖아요.

- 그때는 네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 아니에요. ..

- ...

- 그때 내가 잡은 거 아니에요. 그애가 다시 온 거에요.

  후훗 ^^ 그때 다시 와서 나한테 청혼 했거든요. 그래서 받아 준 거에요.

 

2달이 조금 넘어 그가 돌아 왔을 때

나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언젠가는 다시 떠날 거라는 걸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헤어지고 다시 만났지만

지금 우리가 겪은 이별은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그를 보내는 건

겁이 나서다.

2년 전의 그때처럼 그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풍덩 빠져버리는 사랑보다

서서히 물들어 가는 사랑이 더 절실하고 무섭다는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

 

2년전의 그때처럼 아저씨는 지금도 알고 있다.

내가 아주 잘 견디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때처럼 힘들어 하지도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이 몹시 허허롭다는 걸.

 

그래서 생전 안하던 메신저 대화 신청도 해 준다.

 

- 뭐냐? 그 표정은. 뭘 찾는 거야?

- 심심해서요. 놀아주세요

- 나이가 몇인데 놀아달래? 그 정도는 혼자 찾아야지.

- 없어요

- 경험이 쌓이면 이제 혼자 할 법도 하잖아

- 그게요.... 사랑하는 거랑 이별하는 것처럼 면역이 안되는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 .... 그러네 ...

 

이휴~ 대화가 썰렁해 졌다.

 

그래두 행복한 아침.

 

행복과 불행은 늘 손을 맞잡고 나타나는 법이다.

2년전 돌아온 그가 다시 떠날 즈음 2년만에 나타난 아저씨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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