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일 사이에 몰라보게 단풍이 예뻐진 과천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죠.
(한주일 사이? 헤헤^^ 지난주엔 서울랜드를 갔었거든요. 비록 놀이기구라고는 범퍼카밖에 안탔지만서두^^)
날이 흐리고, 밤부터는 비가 온다는 소식도 있고해서 그런지 퍽이나 한산해서 좋았답니다.
입구에서 펑튀긴 밤을 사들고,
누군가 대공원은 너무 넓어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 다음 내려오면서 구경해야 한다길래 쬐금 갈등을 하다가
그냥 코끼리 열차를 탔습니다.
일단 사자를 보기로 했어요.
예전에 동생과 왔을 때 사자를 못찾아서 동물원을 몇바퀴 돌던 가슴아픈 기억이 있어서 말이죠.
초원처럼 펼쳐진(물론 사자가 보기엔 갑갑한 우리에 불과하겠지만) 우리에 두 마리 사자가 사이좋은 모습으로 여유있게 누워있더군요.
어흥~ 소리도 내보고,
바보야~~ 하고 불러봐도 꿈쩍도 안하고 말이에요.
같이 간 녀석이 창피하다길래,
옆에 꼬마도 나처럼 하지 않느냐고 따졌더니 동물하고 이야기하는 꼬마만 나타나면 "어! 조그만 안나 저기있네!" 하는 거 있죠.
관람객을 의식하는 몇몇 동물.
특히나 오랑우탄이라든가, 원숭이 같은 동물을 볼때는
영화 혹성탈출 생각이 나서 섬뜻하기도 했어요.
뭔가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이면 멀리있다가도 얼른 철창 앞으로 다가와 애타게 손을 내민다든가,
재롱인지 놀리려는 건지 토사물을 손에 뱉어내는 녀석도 있었구요.
역시나 있기있는 재롱둥이는 곰이었어요.
숙달된 정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아주 능숙한 녀석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연신 손짓, 고개짓으로 먹을 것을 달라... 신호를 보내고는
앉은 자세 그대로 받아먹어 환호와 박수를 받았지요.
덕분에 먹으려고 사들고 간 밤... 모두 털리고 말았어요. 아휴~~ 정말 맛난 냄새가 났었는데...
덩치는 산만한 곰들이
자기 눈동자만큼씩 밖에 안하는 과자며, 과일조각을 받아먹는 모습을 한참 재미나게 보다가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멋진 건
동물의 왕, 호랑이였죠.
아무런 재롱 부리지 않고 무게 잡고 앉아만 있어도 '바보'라고 놀리는 사람 하나 없었고,
어쩌다 한바퀴 어슬렁거려주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주변 관람객을 끌어모았죠.
가끔 '어흥!' 소리 한번만 내주면 모두가 기뻐했구요.
그러면서도 누구하나 섣불리 뭔가를 집어 던진다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어요.
아! 그 위엄이라니.
가장 기억나는 동물은 늑대 에요.
은빛나는 늑대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마리는 아주 크고 잘 생긴 놈이었는데, 몸무게만큼이나 무게있게 앉아있더군요.
그리고 조금 마른듯한 나머지는 연신 서성이고 있었는데, 등에 커다란 상처자국이 있더라구요.
제 앞에 다가온 그 놈을 가만히 마주봤더니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 거 있죠.
그 슬픈 눈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참, 구간조는 입을 안 벌리고 소리를 내더군요.
"안녕하세요", "안녕" 하는데도 입을 꾹 다물고 있길래 실망하고 있는데,
허스키한 남자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소리가 나는 거에요. 아무도 없는 실내에 소리가 울려서 솔직이 쬐금 겁이 났어요.
"바보야" 했다가 같이 간 녀석한테 또 구박받고.
좋은 말만 시켜야 한다나 어쩐다나.... 꼭 도덕선생님 같죠?
그런데 다른 말은 안 가르쳤나봐요.
에버랜드가면 고맙다는 말도 했던 것 같은데....
몇마디 더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힘들어서 그냥 나왔어요.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내려올때는 리프트를 타자고 했는데 못본 동물이 너무 많아서 걸어내려왔어요.
12시에 입장해서 5시가 넘도록 열심히 돌고, 또 돌았는데 못본 것이 너무 많은 거 있죠.
출구를 빠져 나와서 리프트를 탔어요. 연못위를 날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그치만 사실은 무진장 무서웠답니다.
놀이기구의 반짝이는 불빛,
이제는 스러져가는 장미꽃들,
흐린하늘을 닮아 흐려져있는 연못,
멀리 숲의 알록달록한 가을색
모질게 다리품 판 하루가 참 보람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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