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시월엔 늘 슬펐습니다.

약간의 거리 2001. 10. 23. 23:22


점심에 게장을 먹었습니다. 잘 끓인 간장을 부어 삭힌.

저 원래 게장 못 먹거든요. 실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날걸 싫어하기 때문에 불에 익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번 먹어보려 해 본 적도 없어요.


전날에 영화를 봤거든요.
그 영화에서 죽어가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야기를 하대요.
너랑 게장 먹으려고 했다고, 어렸을 때 엄마가 집 나가기전에 맛있게 게장을 해 줬었다고.

게껍질에 밥비벼 먹는게 그렇게 맛나다면서요?


- 오늘 특별히 게껍질 너 줄께. 너 밥 비벼 먹어라.

지난 가을 내내 게장 드실 때 저 혼자만 다른 거 먹던 일.
이제는 잊으신 모양입니다.
영화보고 나오면서부터 게장이야길 하시더니,
됐다고, 게껍질은 그냥 드시라고 하는 이야기에
다리 한쪽을 찢어서 놔 주시네요.

그래서 점심에 게장을 먹게 됐습니다.


오늘은 참 슬펐습니다.
으레 시월이면 도지는 병일지도 모르지만,...

지난 주에 둘을 한꺼번에 결혼시키고 나니 정신적으로 힘이 드신다네요.
사람들이 모두 장난삼아 위로의 인사를 건네니까 넉살좋게 받아치듯 하신 이야깁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아는 저는 그냥 못들은 채 하지요.

그렇게 하나씩 호기심을 누르고, 귀를 막고, 말을 아끼며 자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집으로 오는 길
파란 신호등을 보다 슬퍼서 울었습니다.
날이 밝을 때라면
가을 하늘이 너무 파래서....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시월이어서 눈물이 났다고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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