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다행이야~

약간의 거리 2004. 6. 24. 09:46

 

퇴근하는 길에

예전에 했던 방송을 듣게 됐다.

 

 

참...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로 시작된 진행자의 오프닝은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어떤 국익을 위한 파병인지를 묻는 말로 맺어졌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내가 한때나마 방송을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누구나

-왜 그만뒀어?

라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구구절절한 설명들을 늘어놓고는 한다.

물론 그 어떤 말도 그네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지난 저녁,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사람의 죽음은

보복의 찬반

파병의 찬반

책임의 귀속 여부

등을 따지는 또 다른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그 와중에 누군가는 국론분열을 염려하기도 한다.

 

나는 다만,

가슴이 먹먹할 뿐이었다.

 

파병도 중요하지 않았고,

당초에 누구의 잘못으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도 중요하지 않았고,

그 부모 가족의 찢어지는 가슴도 와 닿지 않았다.

그저 온종일 내가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날이 밝았고

나는

이틀 전과 같이

다시 살고 있다.

 

 

나는 죽은 자도 죽은 자의 가족도 전쟁터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파병될지도 모르는 안타까움도 가지지 않은 자인 것이다.

 

 

 

어떠한 주장을 갖고 뭔가를 말해야 하는 시점에서 나는 늘 이렇게 물어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진즉에 이런 나 자신을 알고 떠나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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