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피오나

약간의 거리 2006. 7. 31. 09:31

 

한때 나의 별명을 피오나 였다.

친구들이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결국 단체로 비디오 방에 가서 잠을 잘 때에도,

늦은 밤 찜질방에서 만나게 될 때에도

나는 항상 12시가 되기전 집에 갔기 때문이다.

물론 나야 신데렐라~ 라고 우겨보지만, 사람들은 그건 내가 밤이 되면 변신하기 때문일 거라며 피오나 라고 했다.

 

 

내가 어떤 모임에 처음으로 인사를 했을 때는

서울 서남부지역의 연쇄살인으로 연일 뉴스가 시끄럽던 때였다.

언젠가는 경찰이 우리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용의자를 찾기위해 거주자 방문조사를 하고 있다는 경찰은 사람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서,

연쇄 살인 수사를 한다고 말하면 더욱 문을 열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처음 그 사람들을 만나던 날 아빠는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화를 해 오셨다.

-위험하잖아. 일찍 들어와야지. 택시 타면 안돼

-네~

첫 만남이 어색하던차에 전화를 핑계로 일찍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 후에 사건이 잠잠해 지자 아빠는 평소대로, 밤 11시면 전화를 하셨다.

 

회사 회식 때에도,

친구들과 만날 때에도,

성당에서 미사후 저녁을 먹을 때에도,

 

밤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내 전화벨이 울리면 11시라는 걸 알았고, 전화의 발신인이 아빠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씩,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겨울 밤이라거나,

택시 강도 같은 뉴스가 나올 때면 시간이 조금 당겨지기도 했지만

 

아빠의 부고를 듣고 사람들은 모두

밤 11시에 울리는 전화를 기억한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의 아빠.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질 않아서인지...  아직 나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밤 11시가 되어 술자리에 앉아 있는 나에게 더이상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그때 나는 아빠를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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