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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이야기~4

약간의 거리 2006. 4. 13. 09:36

밤 열한시가 되면...

마치 카운트다운을 하며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전화를 걸어오는 아빠

 

-어디야?... 응.. 조심해서 들어와

 

이제 주변사람 누구나 나의 전화벨이 울리면

 

"앗, 11시구나." 내지는

"아빠네" 한다.

 

그날은 좀 늦게 전화가 왔다. 11시20분쯤.

친구들과 노래방에 있었는데 무슨 배짱으로 그 시끄러운 곳에 그냥 앉아서 전화를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

웅얼웅얼 분명치 않은 소리였는데... 그냥 너무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으려니... 얼른 들어오라고 말씀하셨으려니... 그렇게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잠에 취하신 듯 분명치 않은 말소리, 아빠가 자고 있어도 다리 운동 한번 해 달라는 부탁...

 

헉헉~ 달려 들어갔더니 세상 모르고 주무시고 계신다.

옷 갈아입고, 씻고 나서야 방에 들어갔는데

아빠는 내가 다리를 주무르는지, 두드리는지도 모르고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주무신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울 아빠 참 귀여우시네 ^^'

 

그날 밤,

엄마랑 나랑은 거의 잡을 잘 수가 없었다.

3,40분 간격으로 부르는 소리와 전화벨소리...

잠결이라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몇번은 전화 오는 소리를 알람소리인줄 알고 그냥 끄고 자버렸던 것 같다.

 

**

 

 

어젯밤.. 아빠한테 또 전화가 왔다.

모라고 모라고 한참을 얘기하시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참 소리가 없어 끊겼나? 하고 보면 아니고...

겨우 알아들은 소리는 나더리 지금 병원으로 와 달라는 거였다.

전화를 끊고 시간을 보니 2시30분.

 

잠시 후 엄마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아빠가 전화 했지?

-응

-모래?

-나더러 지금 오래

-미쳤어. 전화기 끄고 그냥 자. 엄마가 새벽에 집 전화로 깨워줄테니까

 

안봐도 훤히 그려지는 장면들.

뻔하지 모~

 

사실 나는 아빠만큼 아파 본 적이 없으니까 아픔의 강도도 알지 못하고 정말 아픈지 아닌지도 알지 못한다. 그치만 우리는 가끔 농담한다. 아빠는 분명 엄살때매 오래 살 수 있는 거라고.

 

아빠는 힘들다. 아파서 힘들다.

엄마도 힘들다. 아빠가 아파서 벌써 며칠째 잠은 커녕 제대로 앉아 보지도 못해서 힘들고 피곤하다.

엄마도 아마 나처럼 아빠가 정확하게 얼만큼 아픈건지, 그게 엄살인지 아닌지 잘 모를거다.

아빠도 병간호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지 당연히 모르시겠지.

그래도 엄마는 아빠랑 동등하니까 화를 낼 수가 있다.

나도 피곤해. 잠 좀 자야지. 어떻게 밤낮으로 자기만 봐 달라고 하냐... 등등

 

궁지에 몰린 아빠는 나한테 전화를 했을 거다.

아까는 못 알아들었는데 아마도 엄마는 집에 가라고 하고 지금 그냥 너가 와라. 엄마가 짜증내서 나 못살겠다.... 모 그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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