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아직은 뚜벅이이다보니...

약간의 거리 2006. 5. 22. 10:11

 

 

청계천을 가운데 두고 길을 건너려면

오른쪽 건물에서 청계천까지 차도를 건너고,

청계천을 지나,

청계천에서 왼쪽 건물까지 차도를 건넌다.

 

파란불은 오른쪽 건물에서 청계천까지, 그리고 청계천을 건너서 막 다음 차도에 발을 내려 놓으려고 하는 순간 빨간불로 바뀐다. 그 신호가 어찌나 짧은지 어처구니가 없다.

 

신호 한 번에 길을 건너려면 어느 한 곳에선 신호를 위반하던가, 100 미터 달리기를 해 주어야 한다.

 

처음 신호를 접한 사람은 누구나 당황스러워한다. 그리고 아주 나즈막이 황당한 심정을 담아낸 볼멘 소리가 들린다.

 

분명이 이 신호등의 길이를 결정한 사람은 걷지 않는 사람일 거라고 나는 확신해 버린다.

그는 당연히 자가운전자이며, 걷는 사람이 한 번에 길을 건너기까지 기다려주기에는 운전석에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호를 끊어야만 했을 거라고.

청계천을 복원하고 신호를 다시 만들 때, 단 한 번도 차에서 내려 이 길을 건너보지 않았을 거라고.

 

 

여름이 오면 정말 정말 싫은 게 하나 있다.

버스의 에어컨.

앉아 있을 때에나, 서 있을 때에나... 이 눔의 버스의 에어컨이라는 녀석은 정확하게 사람의 정수박이에 그 바람을 내려 꽂는다. 아주 간혹...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에어컨이 설치된 버스를 만날 수 있는데... 그건 너무나 드문 경우이고,

새로 만들어 내 놓은 버스들은 죄다 그렇다.

아직 창문을 열고도 달려도 될만한 기온에도 굳이 에어컨을 틀어주는 기사 아저씨의 친절이 너무나 과잉스럽게 느껴지는 건, 바로 그런 버스의 구조가 커다랗게 한 몫을 한다.

 

긴팔 가디건과 더불어 앞 챙이 긴 모자는 어느새 여름 필수품이 되어 있다.

 

버스를 디자인 한 사람은 결코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일 거라고, 역시 확신해 버린다.

그는 버스를 디자인하기 전에도, 자신이 디자인 한 버스가 운행을 시작한 이후에도 단 한 번도 버스를 타보지 않았을 거라고. 아니, 어쩌면 여름에만 이용을 안 해 본 걸지도 모르겠다.

 

 

하긴, 울 회사 앞 사거리의 신호등을 보면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거리 신호등이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2분.

그런데 간혹 하나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5분 이상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경찰이 신호를 잡고 있을 때다.

그 경찰이 그곳의 횡당보도를 한 번도 건너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길 저편에서 피곤해하며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신호를 바꾸고 건널 수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차들의 긴 꼬리는 의식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의 다리 아픔에는 공감하지 못할 뿐이다.

 

나도 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하면 생각이 바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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