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사과

약간의 거리 2006. 5. 16. 16:51

너무나 많이 늦은 시간에 전화가 왔어.

예민한 엄마와 아빠를 둔 탓에 서로 다른 방에서 잠을 자면서도 늦은 시간 울리는 전화는 얼른 그 벨소리가 멈추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번호를 확인할 새로 없이 받아 들었지.

 

- 아무개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반사적으로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 숫자가 너의 전화번호였던 것 같았어.

다시 수화기를 갖다대자 다시 한번

 

-아무개요..

 

하는 소리가 들렸어.

 

-응

 

침묵...

 

 

-죄송해요.

 

-어?

 

무슨 말인지 못 들었다기 보다는 왜,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죄송합니다.

 

- ......

 

- 오래전부터 누나한테 사과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났어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술먹고 밖에 못해서 미안해요

 

-......

 

- 죄송해요

 

- 어

 

그날 너는 정말로 많이 "죄송"이라는 말을 했던 것 같아.

 

나는 "응" "어" ...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어.

 

 

 

너무나 엄청나게 긴 시간이 흐른 듯도 했지만, 또 정말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우리 둘을 지나간 거지.

겨우 친해지려 할 무렵, 다시는 돌아보지 않게 되었지.

 

이제 난 용서를 할 일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날 밤에 너는 느닷없이 전화를 해 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니...

너의 사과는 나에게는 정말 느닷없는 일이었어.

전화를 끊고 내내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왜?

정말 왜?

이제와서?

이렇게 느닷없이?

무엇을?

 

그냥 너의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한 통과의례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날 밤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왜?'라는 궁금중조차도 그날 밤에는 생각나지 않았어.

 

처음 너의 이름을 들었을 때 백짓장이 되었던 머릿속이 까맣게 변해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이 그 어둠 속에 묻혀있는 것 같았지.

 

이제 다시는,

우연히 마주친대도 너를 보지 못할 것 같아.

 

너의 얼굴을 보게 되는 일같은 게... 너무 두려워졌어. 그날 밤, 그 어둠 속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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