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사랑앞에 당당해야 주인공

약간의 거리 2006. 5. 18. 11:48
 

 

드라마 <연애시대>에 이런 대사가 나왔단다.

더 같이 살다간 진짜로 보기 싫어질까봐 이혼했다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친구가 “그렇구나… 둘 다 끝장을 안 봐서, 바닥을 안 쳐서 미련이 남은 거야.” 라고 했단다.


사람은 날 때부터 자기의 인연이 정해져서 보이지 않는 실로 묶여 있는데 그것이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실타래를 잘 풀어서 자기의 인연을 만나야 한다... 모 그런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남녀가 이혼 한 후에도 서로를 묶고 있다는 그 인연의 끈이 풀리지 않아서,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다. 그들의 결말이 해피엔딩 일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드라마에 빗대어 보면 나는 항상 인생의 조연이거나,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항상 마주보는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에게는 물론 자신이 바라보지 않는 방향으로부터 까지 늘 사랑의 화살표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애틋한 남녀를 알면서도 못 먹는 감 찔러보는 심정으로 열심히 화살표를 날리는 조연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조연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표는 극히 드문 경우에만 존재며,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 조연이라는 거다. 아마도 그걸 깨달은 뒤로 유쾌, 명랑, 발랄하지 않은 연애 드라마 따위는 보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 격려한답시고 하는 “당신 삶에서 만큼은 당신이 주인공이에요.” 하는 말은 대체 무언가?


내 삶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려면, 우선은 이 사랑의 화살표가 잘 맞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일에 대한 것이든 말이다. 그리고 나를 향한 화살표는 내가 지금 그것을 찾지 않더라도 아주 서서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다보니 내 삶에서조차 나는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우정에서든 당최 내게 감히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것이 없더란 말이다.

 

그런데 나...

한 번이라도, 무엇이게라도 당당하게 마주 서 본 적이 있던가!

'나는 전화 같은 거 절대 먼저 거는 법이 없지!'

'나의 이상형? 그런 거 생각 해 본 일도 없지!'

'대충 일하고 많이 놀고, 놀 수 있을 만큼만 돈도 벌면서 살면 그만이지 뭐.'

 

내가 하는 일이란 고작,

어떻게든 사람들과 부딪히는 거 피하려고 노력하기.

누구에게든 먼저 만나자고 말하지 않기.

혼자서도 재밌게 놀기.

모르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 동석하지 않기.

 

전화했다가 바쁘다는 소리 듣고 끊어야 하는 거 싫고, 만나자고 말했는데 약속 있다는 소리 듣기 싫고, 낯선 사람에게 호구조사 받기 싫고, 혼자라서 외롭겠다는 소리 듣기 싫고...

 

사실은 상처받을까 두려워 평시에도 방탄복입고 돌아다니는 신경과민에 불과하지 뭔가!

 

나는 왜 내 삶 속에서도 주인공이 아니라고 느껴왔을까?

주인공은,

일에 성공하고, 사랑에 성공하고, 멋진 친구를 가지고 있고, 모두가 좋아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

일에 도전하고, 사랑 앞에 당당하고, 다른 사람을 감싸주고, 챙겨주고, 북돋아 주는...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미래와 마주 서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벌써 ... 20일째 붙잡고 있는 이 글...

어느 덧 그 <연애시대>라는 드라마... 종영을 앞둔 듯하다.

궁금했다. 그리고 뻔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혼한 남과녀의 빨간 인연의 실타래는 결국 그 둘에게 연결된 것이니.. 이 둘은 다시 이어질 거라고.

한번 헤어진 남과녀가 다시 이어지는 게 가능할까? 응. 드라마니까.

하지만 사랑하고 있는데 현실에선 어렵더라도 드라마에서만이라도 이어지면 안 될까?

한번 헤어졌던 남과녀가 다시 이어진다면 그때는 다시 잘 살 수 있을까? 글쎄. 드라마에선 보여주지 않으니.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기분이 묘했다. 다시 만나게 되는 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여주는 뻔할 뻔한 스토리라구 생각했으면서도 ‘드라마에서조차 이뤄질 수 없는 거야?’ 하는 절망감.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는 통속적이네, 뭐네... 하면서도 결국 그 뻔한 스토리를 꾸며 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상실감을 안겨주면 안 되는 거니까.


그 둘은...

아직 서로의 사랑 앞에 당당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니까 연결될 줄 알았는데...

아직은 아니었지만 남은 회차 동안 어쩌면 갑자기 용기백배해져서는 급작스런 반전이 일어나서 진정한 주인공의 모습을 갖춰주려나.... 아~ 이눔의 미련~

부딪혀보는 거야. 적어도 미련은 남지 않도록 말이지. 미련을 껴안고 사느니 부러져서 깁스하고 깁스를 푸는 날 함께 홀가분해 지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몰라.

 

그런데.... 바닥을 치지 않아서 미련이 남았다는 이야기... 맞는 걸까??

아마도... 맞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또 해보지 않은 것이 '바닥을 쳐 보는 것' 이다. 바닥까지 가는 것이 두려우니까 가 볼 수가 없었다. 넘어지는 게 무서워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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