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그럴려구 그런게 아니었다니깐

약간의 거리 2004. 4. 29. 14:12

원래는 그럴 맘이 아니었다.

대학로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것도 까맣게 잊고는 집으로 달려갔는데...

 

나두 엄마랑 같이 깨끗하게 집정리 하고 싶었다.

그치만

아직 공사는 끝나지도 않았고,

온통 먼지 투성이고,

방에 들어가 앉아 있기는 뭐하고,

거실에서 왔다갔다 하니 괜히 걸리적거리고,

다리는 아프고,

 

 

저녁을 먹기는 해야겠는데

아직 싱크대는 사용할 수 없다하니 대충 먹고 설겆이 하려면

거실에 쌓인 먼지 치우기에도 버거운 시간이니 그럴 것 같고,

시켜 먹자니 것도 그렇고,

-뭐 먹을까?

물어도 언니는 청소기만 돌리고.

 

 

그냥

갑자기

집 안에 쓸모없는 물건인 내가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새로운 주방가구를 빨리 정리하고 싶은 듯 상기돼 있고,

언니는 이상하게 오늘따라 집안 일을 열심히 하고...

 

나는 그냥...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뿐이었다.

 

언니가 정리를 끝내고

-뭐 먹을까?

되물었을 때는 나는 이미 모든 게 귀찮게만 느껴지고 있을 때였다.

 

 

겨우 그런걸 가지고

성질이 나쁘다니 뭐니 해가며 구박을 하는 건 또 뭐람.

아무튼 엄마보다 더 큰 소리로

-내가 뭘? 내가 뭘 어쨌다고 난리야? 치울게 있으면 말했으면 되잖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왜 이렇게 목이 안 터지는 거지.

 

아무래도 소리가 지르고 싶었나부다.

사실 더 크게 지르고 싶었는데

 

목이 아팠다.

 

 

 

문을 쾅! 닫고 들어와서는 음악을 크게 틀고 앉아 씩씩거리는데

사실... 나... 그때 조금은

겁이 났다.

 

엄마가 지금이라도 쫓아들어와서 뒤통수라도 치면 뭐라고 하지?

 

'그래~ 나 성질 나빠'

 

이럴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볼륨을 줄였다.

 

 

 

다행이도 엄마는 그냥 잠 드셨다.

 

 

 

자꾸만 맘에 걸리는 말,

-너 전에 나한테 그랬지? 화나면 혼자 삭이지 말고 그냥 말하라고.

  그래서 말하는데 왜 네가 더 큰소리로 쳐?

 

 

 

 

아침에 세수하고 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소리친다.

 

-나올때 걸레 갖고 와. 거기 빨아 놓은 거 있지?

 

'퉁퉁거리기는...'

 

-말을 왜 그렇게 해. 좀 친절하게 할 것이지...

걸레를 건네주며 한마디 했더니 화가나면서도 웃긴 모양이다.

삐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그럼 어떻게 말해?

한다.

 

-좋게 말해.

 

 

 

 

묻닫고 나오는데

-잘다녀와~

하는 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응~~

하고 왔는데... 그래도 맘이 편치 않다.

 

 

으휴~ 정말,

나두 정리하는 거 도와줄라고 했다니깐!!!

 

조퇴하고 일찍가서 청소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