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앞서가지 마

약간의 거리 2006. 1. 31. 16:26

앞서가지 마.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던 말.

 

앞서가지 마.

 

오랜동안, 또 앞으로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아 있을 말.

 

 

사람의 말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은연 중 흘리는 말 속에도 그 사람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담고 있을 때가 많다.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그 속을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이야기 한다.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 이 남겨 둔 여운을 난 너무 빨리 알아채 버린다.

1) 여기까지만 알아 줘. 그 후는 알아도 모른 척 해 줘야해

2) 지금은... 여기까지 밖에 말 할 수 없어

3) 여기까지만 말해도 다 알아 듣겠지?!

 

문제는 항상 (2)번에서 발생한다.

아직 상대는 확신이 서지 않는 미래를 덜컥 내 입으로 말해 버린다거나,

상대가 모른 척 해 주길 바라는 미래를 아는 체 한다거나,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상대가 "여기까지만" 이라고 선 그어 놓은 이후의 일들이 나에게는 그닥 유쾌하지 못한 일일 경우가 많다는 거다.

 

 

 

아직 확신하지 못한 여기까지만의 뒤를 내 입으로 먼저 말해 버렸을 때,

상대는 그걸 깨달아 버린다.

사람은 가끔 자기가 모르는 자신의 마음이 있는 법이다. 이상하게도 그게 나는 나를 모르지만 남은 나를 보고 있는데, 결국 남의 입을 통해 나를 깨닫게 되는 거다.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될수도, 영원히 묻혀갈지도 모르는 마음.

나의 앞서감이 그만 그걸 톡! 하고 건드려 버리는 거다.

 

상대가 모른 척 해 주길 바라는 걸 내가 아는 체 해버렸을 때,

대부분은 부정하며 화를 낸다.

나와 무관한 일이면 나도 아는 척 같은 거 하지 않았을 텐데...

모른 척 하는게 더 숨막히니까 할 수 없이 건드려 버린 건데...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앞서가지 마.

 

그렇게 말해버리면.... 난 말문이 막히지만. 그래서 그냥 깨갱~ 해 버리지만.......

 

 

 

하지만 알아.

결국은 그렇게 되어버리는 걸.

 

한 때는 내가 그걸 말해 버렸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거였어.

원래부터 그렇게 되게끔 결정지어져 있었다는 걸.

 

 

앞서가지 않고 싶은데,

말해 주는 것만 듣고,

거기까지만 보고,

딱 그만큼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싶은데...

 

그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를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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