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나의 두 번째 밥 타령.
-밥 먹는 구나.
-(퉁퉁거리는 목소리) 무슨 밥? 지금 집에 들어 왔다.
-나도 지금 내렸는데
-(여전히 퉁퉁) 집에 밥도 없어. 지금이 몇신데 집에 밥이 있겠냐?
-그래? 난 집에 가면 밥 있는데
-좋겠네. 밥 많이 먹고 뒹굴뒹굴 살이나 쪄라
-그러지 마~
-뭘~?
-왜 그렇게 퉁퉁거려. 그러면 안돼지
-왜 안되는데?
-이따가 마음 아파서 못자잖아
-...
-그치?
-너야 말로 미안하지?
-마음 아퍼? 안 아퍼?
-니가 먼저 대답해. 미안하지?
-미안하다!
-응... 사실... 지금도 마음 안 편해.
벌써 몇번째인지...
그 놈의 '밥'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 게 말이다.
뭐 오늘은 싸운 건 아니지.
만나면 헐레벌떡, 겨우 영화 시작시간에 맞춰 들어간다.
좋아하는 CF도 못보고, 예고편도 다 지나가고 영화 앞부분 잘리지 않고보면 다행이지.
끝나고 나오면 9시.
부랴부랴 집에 간단다.
사실 서울이나 수원이나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오늘만 해도 내가 집에 도착해 옷갈아 입는데 자기도 지하철 내린다고 전화가 왔으니 고작해야 5분,10분.
그런데도 수원으로 간 후로는 늘 이런 식이다.
자기야 노는 날 늦게 일어나 늦은 밥을 먹었으니, 또 회사에 가서 정리끝나면 사람들과 어울릴테니까 상관없겠지만
종일 일하고 12시, 점심시간에 밥 먹고 퇴근한 사람은 그런게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전에도 그랬었다.
그는 아직 학생이었고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방학이면 집에 있던 그가 퇴근시간에 맞춰 만나러 나온다.
-배고파. 뭐 먹자
-난 지금 먹고 나왔는데...
-그래? 그럼 배 안 고프겠네.
-응
그때는 서로 시작하는 때였으니까 더 이상 말도 못하고
'다이어트 하는 셈 치지 뭐' 이러면서 잘도 참았던 거다.
그런데,
지금도 내가 그때처럼 주린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건가?
그날도 그는 쉬는 날이었다(그는 평일에 쉰다)
그날도 우리는 극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5시에 퇴근을 해 열심히 갔는데... 그는 그 시간까지도 자느라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그가 말했다.
-우리 팀 오늘 회식한대.
-쉬는 날이잖아. 회식하는데까지 가야 돼?
-응. 오라고 전화 계속 오는데
-저녁 먹고 가. 회식은 좀 늦어도 되는 거잖아.
-...
-회식가서 밥 안먹어도 되잖아. 좀 늦게 가서 같이 술만 몇잔 마셔.
-그럼 뭐 빨리 먹자.
대충
아무거나
빨리
-나 안 먹을래. 그냥 가
-먹자며
-안 먹고 싶잖아. 그냥 가
-넌 요즘 너무 배려가 없어졌어.
배려라니.
배려가 없어졌다니.
그날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데이트하러 간다는 애가 밤10시나 되어 들어오면서 밥도 안 먹고 왔다고 하면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식구들이 있을까?
그것도 매번 말이다.
오늘도 터덜터덜 오다가 떡볶이를 샀다.
사고 보니 동생은 아직 매운것을 못 먹으니까 순대도 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동생이
-밥은?
묻는다. 검은 비닐 봉다리를 슬쩍 치켜 올렸더니 언니가 거든다.
-오늘은 좀 늦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정말 내가 퉁퉁거리는 게 너무 한 걸까?
그러니 오늘은 내가 영화보지 말고 그냥 저녁먹고 놀자고 했지?
제발~~~~~~~~~
밥 좀 먹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