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이모이야기 : 아빠의 백내장 수술날

약간의 거리 2004. 3. 6. 00:06

 

이모는 겁이 많다. 아니, 마음이 여리다는 게 좀더 맞는 표현같다.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 싫어하고. 싫은 소리 못하고, 받아야 할거 달란소리 못하고,

 

참, 아빠와 이모의 공통점이 있다.자식 친척집에 안 보내기.

 

아빠는 우리가 방학때 친척집에 며칠이라도 갈라치면 쌀을 싸가지고 가라고 했다. 신세지는 거 싫다고.

어쩌면 평생을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 갑자기 들기도 한다.

 

다시 본론으로,.....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집안 사정상 이모가 우리 네 자매를 키우게 됐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흐릿한 기억속의 몇 장면과 엄마가 들었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그때의 일화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하루는 이모가 떡볶이를 해 줬다.

정말 맛이 없었다. 우리가 모두 맛이 없다고 한마디씩 하자 이모는 화를 버럭내며 먹지 말라고 했다. 입바른 소리 잘해대는 내가 말했다.

"이모. 이게 다 시집가기 전에 살림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 나중에 음식 맛있게 하면 좋지 뭐"

(근데 이모는 아직도 음식은 잘 못한다. ^^)

 

막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이모가 야단을 쳤단다.

막내 왈, "이모 가. 우리끼리  밥도 해먹을 수 있고 다 잘하니까 그냥 이모네 집에 가."

 

그때 막내가 5살, 내가 9살이었다.

1년 남짓을 그렇게 살다가 ... 이모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헤어졌는데...

그때 이모가 우리를 키워줘서 그런가... 아무튼 아빠는 친척들 중에 이모를 가장 좋아한다.

 

어쨌든 그런 이모가 요즘 아빠 간호를 하고 있다.

간병인은 죽어라~~ 하고 싫으시다니...

엄마 말로는 이모가 자청해서 오겠다고 했다지만 우리가 보기엔 엄마의 신음소리에 차마 외면할 수 없던 이모의 심성과 못지않은 이모네 식구들의 배려 때문에 이뤄진 일이다.

 

낮에 전화가 왔다.

"아빠 수술하기로 하셨거든. 엄마 오면 하자니까 그냥 아빠가 나더러 하라고 해서 내가 동의서에 싸인했어. ... 3시쯤에 한대"

"응. 엄마는 언제 온대? ... 응 갈께"

짐을 챙기고 나가려고 하는데 또 전화가 왔다.

"수술 시간이 당겨졌대. 2시30분이래. 엄마는 그때까지는 못오신다는데..."

"어.. 나도 그때까지는 도착 못할것 같은데... 아무튼 바로 갈께."

 

사실 모... 백내장 수술 같은 거 할머니는 혼자 병원가서 하고 오셨다니 별거 아니다.

그래서 사무실을 나서기가 남아있는 사람들한테 민망해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한다.

"원래 오늘은 진료만 받는다고 했는데 갑자기 수술까지 해버리자고 해서 이모가 동의서에 싸인을 했나봐요. 근데 아무래도 가족이 아니다보니 수술시간까지 아무도 못온다고 해서 겁이 나는 거 같아요............."

 

종로 청계천 시청...

안밀리는 곳 하나 없는 동네가 ....

하늘이 도왔나?

폭설에 겁을 먹은 사람들이 차를 두고 나온 탓에 용케도 시간안에 도착을 했다.

 

"니가 다시 설명 들어봐."

"뭐.. 잘 되면 좋은거고, 아니어도 더 나빠지는 건 아니잖아."

"나빠지는 거지... 원래 5시나 7시에 한다고 해서 내딴에는 넉넉하게 말한다고 3시라고 한건데..."

아빠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잠시 후에 엄마가 왔다.

내내 나한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모가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고보니 아빠한테 TV에서 흔히 보던 격려의 말 같은 것도 한마디 못했다.

 

 

'┠anoth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조카에요  (0) 2004.03.12
채 승 호  (0) 2004.03.09
동생이야기2: 엄마는 용감하다  (0) 2004.02.20
할머니의 오곡밥  (0) 2004.02.06
아빠이야기 3 : 달래기  (0) 2004.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