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임신 초기부터 낙지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치만 임신 초에 뼈없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기 때문에
3개월까지 뼈 없는 걸 먹으면 아기가 물렁뼈가 된다나.....???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낙지볶음이 먹고 싶다는 바람을 접어야 했고,
3개월이 지난 뒤에는 고추가루가 하나라도 들어 있는 걸 먹으면 속이 쓰리다고 난리인 바람에 또 먹을 수가 없었고...
어느덧 만삭의 몸.
오늘 태어날까? 내일 태어날까? 를 염려하는 때가 됐다.
며칠전부터 동생은
아기낳기 전에는 꼭!꼭!꼭! 낙지볶음을 먹어야 한다고 또다시 낙지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제 드디어~~ 병원에 아빠 혼자만 놔두고 온 가족이 낙지집으로 출동을 했다.
저녁 7시... 언니 "나 신림역이야? 어디로 갈까?" "형부는?" "출발한댔어."
저녁 7시 10분... 제부 "지금 나갈건데... 집 열쇠 어딨어?"
저녁 7시 15분... 엄마 "어디에 있어? 나 버스 내렸는데..."
-아빠, 혼자두고 모두 나가서 죄송해요.
-아빠가 배불뚝이 딸 못 사주는 대신에 혼자 있어 주는 거죠?
-아빠, 이따가 올때 낙지전이랑 조개탕 사갖고 올께요...
눈물 없이는 볼수 없는 이별을 하고, 이모랑 동생이랑 나도 병원을 나섰다.
-언니, 내가 낮에 이 동네를 다 돌아다녀 봤거든. 근데 실비집이 없어졌어. 거기가 맛있는데.... 그리구 무교동 낙지집이랑 유정 낙지랑 어디가 좋을까?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어? 나 이상해. 아무래도 곧 낳을 거 같애
-뭐? 어떤데?
-그냥 느낌이 그래
-에이, 그럼 아니네
-엄마의 감이라는 걸 언니가 아냐?
-......
나랑 이모는 맛있게 먹었는데, 엄마는 매워서 입을 다물수가 없다며 얼굴이 벌게져서 힘들어 하고, 언니랑 형부는 조금 덜 매운 걸 먹더니 양호...
동생은 곧 애가 나올 것 같아 어떻게 먹었는지 정신이 없단다.
다시 우루루~~~~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아빠가 낙지전이랑 조개탕 이랑 모두 맛있다며 잘 드셨다.
동생은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아서 낼부터는 병원에 못 올수도 있다는 인사를 하고, 아빠랑 엄마만 남겨두고 모두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까지는 안 그랬는데 어그적거리며 걷는 동생의 모습이 영락없는 만삭의 산모였다.
낼이라도 병원에 가야 한다며 짐을 꾸리고, 진통이 올때 먹어야 한다는 약재를 다리고, 아기 낳으면 입술에 발라줘야 한다는 홍삼을 가져다가 다릴 준비를 하고... 정말 부산스럽다.
'아직 안 낳을 것 같은데.....'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는데 동생이 새벽같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진통이 오는 것 같단다.
-몇 분 간격인데?
-일정하지가 않아. 7분이었다가, 5분이었다가,....
-그럼 아니야. 내 친구가 정확하다고 했어. 가진통인가봐
-가진통이 뭔지도 모르는 것이...
-응? 응.... 내가 모르지.... (머쓱~~)
곧 병원엘 간다고 동생은 씻을 준비를 하고, 제부는 어제 다린 약을 덥히고, 홍삼 다린다고 뚝배기를 올려 놓고 난리다.
-나 그냥 출근해도 돼? 있다가 병원 데려다주고 갈까?
-아냐. 그냥 가
-무섭지?
-아니... 아직은 그렇게 아프지도 않아.
엄마가 된다는 건 용감해 진다는 뜻인 것 같다.
어렸을 적, 온 식구가 목욕탕에 가면 혼자만 뜨겁다고 탕밖에서 울던 녀석,
고3때 도서관에서 늦게 돌아오는 길, 골목길에 고양이가 있어서 집에 못 오고 새벽 2시까지 동네를 배회하던 녀석,
놀이공원에 가면, 바이킹은 구경만 하고 기껏해야 사파리나 가야했던 녀석이
너무나 담담한 표정으로 병원갈 준비를 하는데....
난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리고 뭉클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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