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순의 어느 출근길.
버스가 세종문화회관을 지날즈음 비가 오기 시작했어.
한 방울,
한 방울,
차창 유리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보면서 걱정이 됐지.
우산이 없었거든...
나 그래 요즘은...
1년 365일.
매일 같이 들고 다니던 우산을
아침 일기예보에서 비소식을 듣고도 들고 나오지 않고는 해.
아침이면 서너번씩 채널을 바꿔가며 일기예보를 보는,
그리고는 어느 방송과 어느 방송에서 서로 이야기가 달랐다고 토까지 달아대는 나의 극성스런 날씨 사랑.
그리고 기껏 본 일기예보와 무관하게 1년 365일 가방에 넣어다니는,
그날 의상에 맞춰 색깔까지 바꿔가며 챙겨들고 나오는 나의 유난스런 우산 사랑.
우산을 들고도 그냥 비를 맞아버리는 나의 비 사랑.
그런데 그날 아침
스쳐가듯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기는 했는데
우산은 가져오지 않았고,
내리는 비에 걱정이 됐어.
앞으로 네 정거장.
회사 앞에서 내릴 때가 되었을 때는 장대비가 쏟아지더라.
별 수 없잖아.
아침부터 쫄딱 비에 젖에 출근을 했지.
시원하고 좋더라.
스커트가 젖으니까 안이 살짝 비칠라구 했는데 다행이 폭이 넒은 치마라서 둘둘 적당히 말아 쥐어 줬더니 괜찮았어.
다음 날도 비가 온다고 하더라구.
전날 회사에서 들고 온 우산이랑, 하나를 더 챙겨들고 출근을 하는데...
새벽에 헬쓰를 갈때까지만 해도 말짱하던 하늘에서
전날 아침처럼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
어떤 여자가 횡단보도 앞 상가 처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어.
난 저벅저벅 그 여인에게 가서는
가방에 있는 우산을 내밀었어.
"이거 쓰세요."
"아... 괜찮은데....."
"괜찮아요. 쓰세요. 전 두 개라서 드리는 건데요, 뭐"
"네... 고맙습니다. 그럼 어떻게 돌려드리죠."
"그냥 가지세요"
"아니에요... 전화번호 주시면..."
"괜찮은데.. 그냥 가지세요."
"아니에요..."
실랑이 끝에 그녀는 내 번호를 그녀의 핸드폰에 받아 갔어.
내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냐구?
그건 나도 모르지... 아마도 전날 아침에 비에 젖에 출근한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였나봐.
그 우산 말이지...
2년쯤 전에 학원 앞에서 산 거야.
너무 예쁜 색깔의 우산이 있는데... 값은 싼 거였지만, 그때 내가 워낙에 우산이 많았잖아.
또 사면 혼날 것 같구, 갖고는 싶고...
며칠을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비도 오지 않는 맑은 날이라서 밖에 내 놓지도 않았는데
가게 들어가서 뒤져서 산 거라니깐.
결국 그녀는 연락이 없어.
혹시 전화번호를 잃어버렸을까?
그래서 어쩌면 어느 아침엔가는 출근길 그때 나에게 우산을 받아간 그 장소에서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는데...
그녀도, 우산도, 소식이 없어.
역시나, 그녀가 내 전화번호를 받아가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랬어. 그치? 어차피 처음부터 돌려받을 생각 같은 거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생각한 건데...
그녀도 어쩌면 나처럼 회사에 가면 그녀의 우산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내 우산과 자기의 우산 두개를 들고 오던 날,
내가 그녀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우산이 없어 난감한 어떤 사람을 만나서 그 우산을 건네주었을지도 몰라.
지금쯤 내 우산은 그렇게 여행을 하고 있지 않을까?
꼭 필요한 사람들의 손을 돌고 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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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단책,
책 돌려읽기
북크로싱~
이 이야기를 지난해였나?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참여해볼까? 생각만하고 있었는데...
내 우산이 책 대신에 돛을 달고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냥 세상이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