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한 세상이 지나갔네 3-1

약간의 거리 2005. 7. 12. 17:12
 

 

아직도 나는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가끔씩 스토커처럼 그의 홈피를 들어가면 가슴이 옥죄어 와서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1년이 지났다. 그와 헤어진 지.

그건 분명 나의 요구였고, 내 의지였는데... 나는 마치 실연당한 사람처럼 아직도 실감을 못하고 있다.

한 세상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은 그걸 느낄 수가 있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는 마음이 남아 있지만

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설마, 설마... 하면서 사랑은 시작됐다.

사랑이라는 건 달리기처럼 ‘요이~ 땅!’ 하고는 시작되지가 않는다.

3월 2일이면 입학하는 학교처럼 시작일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몸이 으슬으슬 춥다거나, 콧물이 흐른다거나, 기침을 한다거나 해서 감기가 걸린걸 알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시작을 알 수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아주 불현듯, 지나간 어떤 날에 이미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는 거다.

매일 아침 11시가 되면 도서관 입구를 연신 쳐다보던 내 모습을 깨닫게 된 어느 날,

기다려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그 때문에 몹시 우울해 있던 나를 발견한 날,

나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게 된다.

그리고는 기억을 하나씩 들춰 보는 거다.

 

“엄마가 도둑질 하러 가네요. 매일 일찍 나간다고?”

“그래서?”

“아침에 도둑질 하러 가는 사람도 있냐고 했죠.”


“우리 커피 마시러 가요”

“응.”

“매점 말고, 저 아래 커피숍이요.”

“힘들잖아.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그냥 가요”


언제일까?

사랑은 언제 시작이 된 건지, 그게 시작이 될 때도,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은 뒤에도 그 출발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끝은 알 수가 있다.

정확하게 언제 끝낼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그 끝이 서서히 다가오는 건 느껴지는 것이다. 이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때로 모른 척 하면 그냥 지나가기도 하는 법이니까.


이별이 명확한 건 참 나쁘다고 생각했다.

몇 월 몇 일!

날짜가 도장처럼 박혀서, 알콜이나 아세톤 같은 걸로도 지워지지가 않아서...

이별 열흘,

이별 보름,

이별 한 달째,

이별 두 달째,

이별 일년...


그가 상꺼풀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의 손에 난 흉이 오른 손이었는지 왼 손이었는지, 그가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의 전화번호가 몇 번인지,


기억이 났다가 사라졌다가.. 신기루 놀이를 하다가는 안개가 낀 것처럼 조금씩 그것이 흐려지고 어느 순간 하나씩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한 세상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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