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한 세상이 지나갔네 3-2

약간의 거리 2005. 7. 13. 10:09



헤어지던 날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곳

 

 

 

 

 

하루가 지났다.

그의 생일.


함께 하는 동안 한번도 하지 않았던...  그와의 모든 것에 의미부여하기.

헤어지고 나서야 혼자서 해 오던 '의미부여하기'는기억을 붙잡아 두려는 발버둥 같은 거였다.

잊는 것도,

잊지 않는 것도 겁이 났다.

그렇지만

잊는 것도,

잊지 않는 것도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

시간은 저 혼자 흘러가는 것이다. 느리게, 혹은 조금 느리게...



생일 축하해.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네가 행복하다는 게 나를 완전히 잊었다는 걸까봐서야. 그러니까... 나를 기억해 준다면,.. - 내가 말하는 기억이라는 건, 1년 아니면 4년에 한번쯤.. 하늘이 코끝이 찡할 정도로 맑아 보인다거나, 태풍이 부는 밤 창유리가 심하게 흔들리며 비가 내려서 잠이 깬다거나 했을때, ‘그 녀석은 잘 살고 있을까?’하고 궁금해 해 주는 거, 그냥 스쳐가듯이... 그리고 10년이나 20년 후에 찾아오겠다는 약속... 10년이 지난 후 찾을까, 20년이 지난 후 찾을까... 후훗. 이 약속을 기억하라는 건 좀 무리인 것 같다. - 나를 기억해 줄 수 있다면 행복해져도 좋아.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을 하고,

아무도 구하지 않은 허락을 하고,

아무도 마주쳐 주지 않는 술잔에 건배를 한다.


내가 붙잡고 있던 기억의 옷자락이 조금씩 투명해지더니 어느샌가 그 꼬리마저 빠져나가고 있다.

그건 마치 아무리 주먹을 꽉 쥐어도 잡을 수 없는 바람과 같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땐 더 이상 주먹을 쥘 필요가 없다.

손을 펴자 스르륵 내 안에 남아있던 아주 작은 천 조각이 쓸려 나가는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손을 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다.

알고 있다.


그저 한 세상이 지나가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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