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들 때면 길을 걷는다.
스무살,
첫 직장에서, 첫번째 감사를 받던 때
사라진 공금 35만원.
매서운 눈빛의 본사 과장과 마주앉아 심문같은 걸 받고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공덕동 로터리에서 마포를 지나고, 마포 대교를 건너, 한강변을 걷다가, 대방동을 지났다.
너무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어서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어느 해던가,
6월 이른 새벽, 군대에서 전화를 걸어온 그 아이가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응. 그래 알았어" 라고 대답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한 달 동안
대학로에서 종로를 지나 광화문을 지나 시청을 지나,
혹은 정동길을 거쳐 경향신문사를 지나고 다시 역사박물관을 돌면서 걸어 다녔다.
걷다가 지치고 힘이 들면 어느 극장엘 들어가 영화를 보고,
콘써트 장에 들어가 방방 뛰고,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서는
"너... 그 동안 슬펐구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고 털털 일어섰다.
힘이 들때면 그렇게 걸었다.
대학로에서 종로를 지나 명동을 한 바퀴 돌고,
명동 성당에 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다.
쉬고 싶은데... 자꾸만 자꾸만 걷는다.
올림픽공원에서 늘 나오던 출구가 아닌 곳으로
발을 옮긴다.
"호수가 있네."
마치 모르는 것을 발견한 양...
그리고는 낯선 문으로 공원을 나선다.
방향을 몰라 헤매던 친구가 한 쪽을 선택한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차들은 쌩쌩 달려간다.
버스 정류장도, 도로의 방향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모르고 있다.
내가 걷기 위해서 부러 낯선 길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사람도 없는 낯선 길,
냄새가 몹시 나는, 장마인데도 가물어 있는 하천을 건너면서,
둘이라서 무섭지 않다고 생각한다.
걷고, 또 걷고,
지칠 즈음이 되어서야 아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며칠을 걸었다.
힘이 들때면 길을 걷는다.
.
.
.
이제 그만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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