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 취업이 잘 되지 않았다.
키가 작고 못생겨서라고 생각했다.
물론 선생님들은 성적이 좋은 아이를 우선 추천해주기는 하지만, 회사들은 대부분 '용모단정'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용모단정은 '키 크고, 날씬하고, 예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요즘은 절대 취업공고에 쓸 수 없는 단어이지만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키000센치 이상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취업공고가 나면, 그 기업에 가고 싶은 아이들이 (담임교사의 추천을 받아서) 지원을 하고 학교 안에 지원한 인원 수에 따라서 취업담당교사가 최종 선정을 하게 된다. 이후 과정은 회사의 취업과정에 따르는데 대부분은 [필기-면접-신체검사]를 거쳐서 취업을 하게 된다. 이 중 '신체검사'는 형식적인 절차이기 때문에 면접에 합격을 하면 최종합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6월 쯤이 되어서 나는 OO은행에 시험을 보게 됐고, 필기와 면접을 거쳐, 신체검사까지 했다. 이제 출근만하면 되는 거라고 들떠 있었는데 갑자기 불합격이라는 연락을 받게 됐다. 실망하고 좌절했다. 신체검사에서 떨어지는 애는 본 적이 없다, 어이가 없다는 말로 다들 위로해 줬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실망이 컸다. 그 뒤로는 어디를 지원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담임선생님도 나를 특별히 추천해 주시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취업을 하지 못하고 3학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성적도 좋은 편이고(아, 고등학교에 와서는 공부를 잘했다) 학급 반장을 하고 있는데, 반장이 취업을 못하면 담임이 부담스럽지 않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우리반 담임은 정말 나에게 1도 관심이 없었다.
학년말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조급해 진 나는 스스로 취업담당교사를 찾아가서 11월 경에 OO증권에 추천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도 필기와 실기는 모두 합격을 했고, 신체검사를 진행했다.
12월 24일 오후, 집에는 나 혼자만 있었다. 아마도 겨울방학을 했던 것 같다. 상업계 고등학교 3학년생들은 11월이면 대부분 취업한 회사에 실습을 나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겨울방학을 할 때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집에 있으니 정말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크리마스 이브인 그날에 드디어 OO증권에서 연락이 왔다. 결과는,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인사담당자는 신체검사결과 폐결핵이 의심되니 병원 진료를 받아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캄캄한, 텅 빈 공간에 혼자만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결핵이라고? 결핵은 전염병인가? 그럼 격리되는 건가? 아빠는 몸이 아픈 사람이고, 우리 집은 좁아서 금방 모든 사람이 감염되겠지? 그럼 아무래도 나는 집에 있을 수 없는 거겠지? 버림받게 되는 걸까? 엄마한테가서 세숫대야도 따로 쓰고 수건도 따로 쓰고, 밥도 따로 먹겠다고 같은 집에 살게만 해 달라고 할까?
빈집에서 혼자 울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용기를 내서 엄마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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