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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버림받을 공포, 유기불안

약간의 거리 2024. 11. 25. 09:54

우리 집은 주소에 '산000번지'였다. '산'이라는 글자는 붙은 건 고지대라는 의미다. 그리고 무허가주택이다. 
돈주고 사는 거래를 했는데 왜 무허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는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장애인이 되었다. 전신마비 환자로 밥도 먹여줘야하고, 대소변도 받아내야하는 실직자, 백수가 되었다. 전업주부였고, 기술 하나 없던 엄마는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했고, 남편을 돌봐야했다. 우리 엄마와 아빠에게는 고만고만한 또래의 딸 넷이 있었다. 
 
하루 아침에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아빠는 여기저기 편지를 써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날엔가 한 독지가 부부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날엔가 엄마는 회사 근처로 언니와 나를 불렀다. 
 
그리고 아줌마가 아저씨를 따라가면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준다고 했다. 하지만 만약에 엄마랑 살게 되면 엄마가 어떻게 해서든 밥은 먹여주겠지만 공부는 시켜주기 어렵다고 했다. 옆자리의 언니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언니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생각이 안난다. 
나는 울면서 공부 안해도 되니까 엄마랑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 후에 언니랑 나랑 모두 엄마랑 계속 살았으니까 아마도 언니도 나와 같이 말했을 것 같다.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광주라는 먼 곳에서 사고를 당해 집에 올수 없게 되고,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은 엄마가 말도 없이 광주로 내려가 버리고,
어느날 갑자기 언니와 나만 외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고,
그리고 다시 만난 곳은 아빠의 병원, 알 수 없는,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을 아빠라고 하고,
그리고 겨우 다시 만난 가족이었는데
공부하겠다고 다시 낯선 아줌마, 아저씨와 살 이유가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너는 상고를 가야해. 우린 너까지 대학을 보내는게 불가능 하거든.'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당연히 '네.'라고 해야 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쓰기 전날이었나, 엄마는 나에게 '네가 정말 원한다면 인문고에 원서를 써도 돼'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미 1년에는 나는 엄마와 사는 조건으로 공부는 포기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공부보다는 버림받지 않는 걸 선택했다. 
 
 
* 내가 여러번의 버림에 대한 기억이 있고 그것이 내 평생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주고있다는 것을 아주아주 오랜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중요한 건 이 모든 버림의 시작은 5.18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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