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를 예뻐해 주셨다. 지금은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쉬는 시간이면 뭔가 나에게 심부름을 종종시키셨고 쪽지 시험을 본 날이면 방과후에 빨간색연필로 함께 채점을 할 사람을 몇몇 남기셨는데 그 중에는 나도 포함이 되었다.
나에게는 선생님께 신뢰를 받는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심부름을 하러 가려고하면 절대 비켜주지 않는 짝을 보면서도 화가 나지 않았다. 괴롭힘이 아니라 부러움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당연히 나의 가정형편을 잘 알고 계셨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측은지심이었거나 기특하게 여기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하루는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후원이 들어와서(더 자세한 설명을 하셨지만 지금은 긴시간이라는 것밖에는 기억이 안난다) 옷을 줄거라면서 바지가 좋은지 치마가 좋은지 물으셨다. 나는 뭔가 안절부절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반 아이들은
'바지요. 바지가 좋아요', '치마로 주세요'하며 자기들이 입을 옷도 아닌데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치마를 입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말하면 애들이 놀릴것 같았고 그렇다고 바지를 입고 싶지는 않아서 결정을 못하고 계속 망설였다. 결국 선생님과 목소리 큰 애들의 의견으로 바지로 결정이 됐다.
얼마간의 날짜가 지난 후에 옷이 도착했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셔서 그때 말한 옷이라며 증정식을 했다. 그리고 애들이 궁금해하니 옷을 보여주라고 하셨다. 연두색과 하늘색의 중간 어디쯤인듯한 파스텔톤의 7부 바지와 티셔츠 한 벌이었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예쁘다, 별로다 등등 소리를 지르며 난리였다.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창피했다. 숨고싶었다.
지금은 그 창피함의 이유를 명확히 알지만 그때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집에 옷을 가지고 왔다. 엄마랑 아빠는 어떤 반응이었는지 생각이 안난다. 잘 어울린다고 하셨었을까? 입어보기도 한 것 같은데 그 옷을 학교에 입고 간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한번은 입고 갔을거다. 선생님이 그 옷을 입은 나를 궁금해 했을테니까.
가난한 아이에게 인권 같은 건 없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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