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ook

14. 버릴 휴지도 없던 시절

약간의 거리 2024. 11. 21. 19:36

그 시절에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학교 다니기가 여러모로 힘들었다.
학교에서 뭘 그리 내라고 하는게 많은지....
육성회비도 내야했고, 우유 급식값, 국군장병에 보내는 쌀(+편지봉투 하나 가득과 선물들), 크리스마스씰도 구매해야 했다.
 
육성회비는 요즘으로 치면 등록금 같은 것인데, 지금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서 등록금을 내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국민학교도 돈을 내야 다닐 수 있었다. 얼마만에 한번씩 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돈도 제때 내지 못해서 담임선생님께 불려가기 일쑤였다. 
 
우유 급식은 모든 아이가 꼭 해야하는 건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먹게 하는 학급도 있었다. 선생님 입장에서야 아이들이 우유먹고 쑥쑥 잘 크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돈이 없는집은 쌀 살 돈도 없는데 어찌 우유를 먹이라는 것인지. 눈치가 빨랐던 나는 말해봐야 소용없을 걸 알아서 엄마한테 우유값을 내 달라고 말했던 적이 없는것 같다. 담임 선생님 중 어떤 분은 매일 학급 전체 우유를 받아오는 당번을 하는 조건으로 내가 우유를 먹게 해 주기도 했었다. 
 
한달에 한번씩은 폐품이라는 걸 걷었는데 이게 제일 문제였다. 버리는 종이를 모아서 일정 두께 이상씩을 제출하라고 했다. 그 시절에는 쓰레기라는 게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종이도 많이 쓰고 택배박스도 만만치 않은데 우리 집이 신문을 구독하는 것도 아니고, 종이라고는 내가 쓰는 책과 공책이 전부인데, 애 넷이나 있는 집에서 매달 무슨 수로 폐품을 만든다는 건지. 진짜 버릴 휴지도 없는 우리집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요령껏, 애들에게 신문을 한장씩 걷는다거나-그때는 한 반이 60명이던 시절이다- 등등의 방법으로 어찌 모면을 했는데 동생은 매번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모든 것이 나 먹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데 남을 위해 자꾸 뭔가를 내라고 하니, 없는 집에서는 학교 다니면서 수시로 담임선생님께 불려 꾸중과 잔소리를 듣거나 공개적으로 불쌍한 애라는 걸 드러내는 일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my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치마가 좋아? 바지가 좋아?  (0) 2024.11.23
15. 잡지는 사치  (6) 2024.11.22
13. 왜 나만...  (5) 2024.11.20
12. 죄책감  (1) 2024.11.19
11. 서로 다른 기억  (3) 202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