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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왜 나만...

약간의 거리 2024. 11. 20. 16:10

아빠는 가끔 간식을 사 주셨다. 

아주 무더운 여름 날에는 한 개에 50원씩 하는 하드를 하나씩 사 먹었고 가장 많이 먹었던 간식은 건빵이었던 것 같다.

건빵 한 봉지를 사면 아빠까지 5명분으로 갯수를 세어 똑같이 나눴다. 맛있게 간식을 먹으며 동생들이 놀고 있는 동안 나는 아빠 옆에 엎드려서, 아빠가 불러주는 대로 편지를 받아 쓰거나 금전출납부를 작성했다. 

 

편지는 여러 곳으로 보냈다. 광주에서 5.18 희생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보냈던 것 같고,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동안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도 보낸 것 같다. 정부부처 어디엔가로도 보냈던 것 같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주된 내용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우리 가족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제공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빠 옆에서 편지를 쓰다가 글자가 틀리면 혼나고 팔 아프게 편지를 다시 써야 했고, 가계부 금액이 안 맞으면 또 혼나야 하고,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건넛방에서 간식을 먹으며 놀고 있는 다른 자매들이 정말 부러웠다. 

 

 

중학교 때에는 우리 집에도 전화가 있었다. 가사 시간에 수를 놓는게 있었는데 바느질이 너무 어려웠다. 매일 선생님한테 혼나는 내가 답답했던지 하루는 친구가 자기 집에 같이 가서 남은 부분을 배워서 하고 가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학교가 끝났으면 집으로 곧장 와야지, 어디 놀러갈  생각을 하냐며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나쁜 걸 배웠다고 화를 내셨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바느질을 하도 못해서 배우러 가는 건데..... 나는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자마자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의 꾸중은 이어졌다. 

그 시절 나와 똑같은 중학생이었던 언니는 학교 끝나자마자 집에 온 적이 없다. 그런데 언니가 아빠한테 혼나는 걸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대체 왜?? 왜 나만???

왜 맨날 나만 아빠한테 붙잡혀서 일을 해야 하고, 허락도 안 맞고 그냥 놀러간 것도 아닌데 괜히 전화했다가 혼나고, 집에 와서 또 혼나고??

 

모든 상황이 억울하고,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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