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회사생활

도움 요청도 업무 능력

약간의 거리 2021. 2. 10. 19:14

강사 신규 채용을 하는데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담당자가 엄청 바빠졌다. 채용이 끝나면 나도 함께 활용할 인력이라서 모른 척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연락을 했다.

 

- 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정리하고 나면 보여야 하니까 자료 공유해 드릴께요.

- 네~ 도움 필요하면 말해요.

 

그리고는 너무 안일하게 잊고 있었는데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 팀장님께 연락이 왔다. 아무개씨가 넘 바쁜 거 같은데 지원해 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다시 연락을 했다.

 

- 지금 어느 정도 진행됐어요?

- 서류 합격자 면접 안내 전화하는 중이에요.

(무려 17명에게 개별적으로 전화 중)

- 그럼 같이 전화할까요?

-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서류 보셔야 하죠?

-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 내일 면접 준비는 됐어요?

- 전화하고 나서 하려고요

- 심사위원별로 서류 다 복사해서 세팅해야 하죠?

- 네

- 그럼 혹시 초과 신청했어요.

-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시간이 늦어서 못하고 그냥 야근해야 할 것 같아요.

- 무슨~ 6시 전에만 결재받으면 되는데 빨리 올려요. 나도 같이 올려줘요.

- 같이 하시려고요? 그래도 될까요?

- 응. 당연하지. 복사하고 라벨링만 해도 1시간 넘게 걸릴 것 같은데. 나 연락할 곳이 있어서 전화 한 통만 하고 내려갈게요.

 

그리고 우리는 2시간을 야무지게 야근하고 함께 퇴근했다.

 

- 내일도 오전에만 일정 있어서 오후에 면접 서브할 수 있으니까 할 거 알려줘요.

- 네... 너무 감사해요.

- 나 말이야, 사정하고 매달려서 도와주는 사람 말고, 부탁받고 당당하게 도움 주는 사람 역할하고 싶다. 담엔 그렇게 하게 해 줄 거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잘 못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아주아주 오래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 회사의 업무 분장은 한 달을 기준으로 했을 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월초에 한 파트의 업무가 마감이 되면 다음 파트의 작업이 시작되고, 이 두 번째 파트가 마감이 되면 마지막으로 급여 담당자가 업무를 한다. 사실 다른 파트는 정해진 마감날이 있진 않지만 급여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급여 담당자의 최소 작업 시간을 고려한 암묵적인 마감 시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하루 이틀 늦을 수 있지만 월급 날짜를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번번이 이 묵시적인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도와주겠다고 해도 거절하고 매일 야근을 하지만 일이 서툰 것인지, 느린 것인지 항상 날짜가 늦어졌다. 덕분에 급여 담당자는 처음에는 하루, 그다음 달은 이틀, 꼬박 밤을 새워 일을 해야 했다.

도움을 받지 않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사람의 경우는 '미안해서'였다. 자기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해 달라고 하기 미안해서,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야근을 하고 일을 해서, 이 모든 것이 미안해서 도움을 청하지도,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도움 제안을 거절당한 급여 담당자가 드디어 폭발해 버렸다.

- ○○○씨, 내가 도와주는 게 미안해요? 그럼 자기가 일 늦게 마감해서 내가 2-3일씩 밤샐 때는 안 미안해요? 나 나중에 밤새고 싶지 않아서 도와준다고 하는 거니까 그냥 제발 좀 맡길래요?

 


어제 유퀴즈에 출연했던 어떤 분의 사망기사가 나오면서 일이 많아서 사람이 죽을 수 있나,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나는 절대 일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는 없다고 우겼는데 그때 지난 연말에 일이 너무 많다고 울음을 터뜨렸던 직원이

- 일이 많아서 죽을 수도 있어.

라고, 거의 20 센티 앞까지 얼굴을 내게 들이밀고 눈을 딱 맞추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 어... 그래... 어, 그럼 그냥 죽지 말고 나한테 말해

하고 나는 답을 했고, 주변에 약 2초쯤 침묵이 맴돌았다가

- 너무 정면에서 말했어

- 완전 놀란 얼굴 봐

하면서 다들 난리가 났다.

- 그래? 내가 너무 똑바로 보고 말했어?

하며 '일이 많아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 직원은 웃었지만,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남의 입장에 대해서 너무 생각하지 않고 말한 거 같아서. 그리고 진짜 누군가가 힘들어하는데 모르고 있는 걸까 봐. 혼자서 마음속으로 '일이 많다고 해서 절대 혼자 그냥 죽어버리지 마. 내가 꼭 도와줄게' 하고 다시 한번 다짐하듯 말했다.

 


이유 없이, 아니 이유가 있던 없던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괴롭히는 건지도 모르고 그런 짓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몰라서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말하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도 누군가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