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회사생활

일단, 예스(YES)라고 대답하자

약간의 거리 2021. 2. 4. 11:09

아주 친한 친구 그룹이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만나지를 못했다.

새해가 되어서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니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다.

단톡 방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며

 - 언제 봐?

하는 답 없는 질문들만 오가고 있는 중이다.

 - 그러게. 설 전에는 볼 수 있을지 알았는데...

 - 그나마 우리는 모여도 4명이니까 만날 수는 있지 않을까?

 - 근데 9시까지 만이라서 퇴근하고 만나면 시간이 너무 짧아

 - 그럼 담주까지 기다려보면 단계가 내려갈까?

 - 근데 설명절이 있는데 안 내려갈 듯

 - 그럼 설지나고 만날 수 있을까?

 - 근데 명절 지나면 확진자가 늘지 않나?

보다 못한 내가

 - 여보세요, 근데씨들~~~ 2월 말이나 3월 초쯤 본다고 생각하고 그때 단계가 변동이 없으면 다시 조정합시다.

하고 말을 했는데 이 '근데씨'라는 말이 사람들에게는 좀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다음부터 무슨 말을 하기 전이면

 - 저기.. 내가 안 그러고 싶은데... 근데...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것이다.

만나고 싶고 안전에 대해 조심도 하고 싶은 마음들이 복잡하게 오가다 보니 생긴 대화였는데 누구라도, 어떤 것으로도 결정을 하기는 어렵고 그래서 이것저것 의견들을 내다보면 누군가는 다른 우려의 부분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표현들이었지만 자꾸만 반복되는 '근데'라는 단어가 우리를 조금씩 더 우울하고 낙담하게 만들고 있었다.

 

뉴스를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표현 중에서도 그런 것이 있다. 보통 화재가 어떤 사고 보도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 화재사고로 두 명이 연기를 마시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강도가 휘두른 흉기에 세명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자들이 이런 보도를 할 때 접속어를 '~하지만'으로 사용하면서 뒤에 '생명이 지장이 없다'라고 하는데 이건 무슨 의미일까? '병원으로 이송됐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대화를 할 때에도 그렇다.

어떤 사람과는 이야기가 재밌고 즐거운데, 어떤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면 단절되는 느낌이 들면서 길게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 00 씨 이 사람 명함을 소장님이 누구한테 줬다고 하는데 혹시 자기한테 있는 확인 좀 해 주라

 - 나 모르는 사람인데

 - 알아. 누구한테 그 명함을 주셨다는데 누구라도 받았어도 기억이 안 나겠지. 누구한테 준지 몰라서 다 찾아보려고

 - 근데 내가 그 사람이랑 엮일 일이 없어

 - 우리 중 누구라도 없어

 

같은 부탁을 다른 사람에게도 한다.

 - 00 씨 이 사람 명함 혹시 갖고 있는지 찾아봐 주라

 - 그 사람이 누군데요?

 - 몰라. 소장님이 이름만 기억하고 명함은 직원 중 누구한테인가 줬다네

 - 그래요? 나한테 명함을 주신 적은 없는데 그래도 찾아보고 말해 줄게

 - 고마워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 일단 긍정으로 대답해 주는 사람에게 호감이 생긴다.

거절의 말을 할 때에도 그러나 보다는 그리고 라는 접속사를 이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