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회사생활

사소한 일은 넘어가요

약간의 거리 2021. 2. 1. 16:58

경영평가가 시작되고 지난해 평가 등급이 낮아 고민이 많았던 회사는

연말부터 경영평가에 대비한 실적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바빴다.

연초에도 관련한 논의가 계속 진행되었고,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

실적을 유목화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부서별로 각기 다른 사업 내용들을 어떤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다른 부서와는 업무의 성격이 다른 우리 부서에게는 별도로 4개의 카테고리를 명명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다.

담당 직원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팀장과 협의를 거쳐서 우리 부서만의 독특한 업무에 대해서는 4개의 제목을, 그리고 회사 타 부서와 성격이 유사한 활동에 대해서는 공통된 제목을 붙여서 결재를 올렸다.

 

그런데 부서장은 모든 이름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 이게 뭐냐? 협력이 더 드러나야 하지 않아? 000이 우리 목적인데 그 말을 넣어야 하지 않아?

- 우리 고유의 언어이지만 대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평가에서의 표현을 바꿨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직원들끼리 의논했던 4개의 제목은 모두 다 바뀌었다. 담당 직원은 사정을 설명하며 의견을 제출했던 다른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어떤 것은 논의 과정에서 거론이 되기는 했지만 특정 분야만 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이유로 탈락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 논의는 단톡방을 통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부서장이 논의의 과정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결재 단계에서 모든 의견을 다 뒤집어 버렸다는 것은 사실 담당직원이 가장 불쾌할 만한 일이다. 과정에서의 문제도 있다. 부서장도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의논해서 만들어 낸 의견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또 자신의 결정으로 모든 것을 뒤집을 거라면 굳이 합의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갖도록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처음부터 혼자 생각을 말하고 그대로 보내라고 지시했으면 일처리에 시간도 단축되고, 의견이 묵살되어 맘상하는 일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직원들은 다시 서로를 다독인다.

- 괜찮아, 그냥 맘대로 하라고 해.

- 맞아, 중요한 일 아냐. 그거 뭐라고 하든 우린 관심 없어.

- 사소한 일에 맘 상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