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회사생활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기

약간의 거리 2020. 3. 20. 17:30

누구에라도 미리 묻지 않는다면

                                          - 문태준

나는 스케치북에 새를 그리고 있네

나는 긴 나뭇가지를 그려 넣어 새를 앉히고 싶네

수다스런 덤불을 스케치북 속으로 옮겨 심고 싶네

그러나 새는 훨씬 활동적이어서 높은 하늘을 더 사랑할지 모르니

새의 의중을 물어보기로 했네

<후략>

 

내가 처음으로 다녔던 직장은 나라에서 30대 안에 드는 대기업이었다. 규모가 큰 회사이다 보니 조직적인 체계가 잡혀 있어서 특별히 업무 매뉴얼을 본 기억이 없는데도 일을 배우고 수행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우선 사수라고 지명된 선배와 상급자인 대리를 통해 대부분의 업무를 배울 수 있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미리 짚어 주는 사람이 있었고 모르면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다른 부서나 팀과 협업이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 먼저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었고, 그다음부터는 내가 보고 배운 대로 하면 되었다.

 

규모가 작은 회사로 이직을 하고 나서 처음 겪은 어려움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의 전체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 어떤 업무를 시키면 그 일이 내 일이었고 또 다른 사람이 다른 것을 시키면 그것도 내 일이었다. 아무도 일을 시키지 않으면 그저 멍하니 있어야 했는데 가끔은 시키지도 않은 일의 결과물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져 사실은 멍하지 있지 말고 알아서 뭔가를 했어야 하는 거였다. 또 일을 시키기는 했지만 시킨 사람조차 과정을 다 알지는 못하는 일들도 있었다.

 

결국, 이 사람, 저 사람을 쫓아다니며 물어물어 일을 하는데, 답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돌고 돌다가 보면 맨 처음에 물어봤던 사람이 다을 아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내가 처음 질문했을 때, 내가 한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묻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질문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상대방이 알고 있는 단어랑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단어를 수정해 질문을 하면 그제야 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관계가 만들어지고, 어느 정도 업무도 익숙해진 다음에, 여전히 누가 하는 일인지 모르는 어떤 일을 알고 싶을 때 나는 우선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내가 정확한 용어를 몰라서 그러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사용하는 단어 말고 설명을 듣고 그것에 맞는 단어가 뭔지 알려줘요."

 

그러면 상대는 나의 설명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금새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정확한 용어와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의사소통 방식이 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은 상대방의 의사소통 방식을 금새 알아채고 그 사람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꺼낸다.

만약 잘 모르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시작해야 한다면, 물어보면 된다.

 

"저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당신의 생각은 어때요?"